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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김성준] 썩은 것은 술이 아니라 술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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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준 경북대 행정학부 교수

김성준 경북대 행정학부 교수
김성준 경북대 행정학부 교수

고대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Horace)의 시구에 '그릇이 깨끗하지 않으면, 무엇을 붓든 다 시어버린다'는 표현이 등장한다고 한다. 문제의 본질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지혜를 담고 있다.

얼마 전 치러진 6·3 지방선거에서 특정 선거구를 중심으로 어느 때보다 치열한 경쟁이 펼쳐졌고, 미디어와 여론의 예상을 뒤엎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통상 선거철이 되면 미디어와 유권자는 후보자 개인의 도덕성과 자질을 검증하는 데 집중한다. 개별 후보가 깨끗하고 유능한지 따지며 더 좋은 새 '술'을 고르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선거 당시에는 그토록 훌륭해 보였던 인물이 정치판에 들어가면 기성 정치인처럼 변질되는 고질적인 현상 앞에서, 인물 검증만으로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러한 현실은 아무리 역량이 뛰어난 사람일지라도 정치 제도와 시스템이 잘못되어 있다면 결국 구시대 정치에 동화되기 쉽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아무리 좋은 술을 새로 빚어 넣은들, 이를 담는 술통이 이미 썩어 있다면 술도 함께 상하기 마련이다. 거대 양당의 극한 대립 구조, 공천권을 쥔 권력자에게 줄을 서야 생존하는 정당 문화, 정책 대신 흑색선전이 득세하는 선거 풍토 속에서는 그 어떤 선량한 후보라도 살아남기 위해 기존 관습을 따를 수밖에 없다. 결국 소신 있는 정치는 도태되고 진영 논리와 막말이 공천으로 이어지는 지금의 구조는 그 자체로 정치인을 오염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

최근 발생한 공천 헌금 사태는 우리나라 정치 시스템의 한계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여당 의원의 공천 헌금 수수 의혹에 대해 당 대표는 "시스템 에러가 아닌 휴먼 에러"라며 개인의 일탈로 선을 그었지만, 이를 구조적 문제와 분리하긴 어렵다. 거대 정당이 공천권을 독점한 상황에서는 소신 있는 정치인이라도 당선을 위해 타협의 유혹에 빠지기 쉽기 때문이다. 문제는 지방선거에서 더욱 심각해진다. 지역구 국회의원이나 지역위원장이 광역·기초의원 공천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에 후보자들은 철저히 이들의 눈치를 보게 된다. 결국 지방자치는 주민의 목소리를 중앙에 전달하는 상향식 구조가 아니라 중앙정치의 이해관계에 따라 인물과 의제가 아래로 내리는 하향식 구조로 왜곡되고 만다.

결국 '썩은 것은 술이 아니라 술통이다'라는 경구가 전하는 메시지는 인물만 교체하는 식의 인적 쇄신이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선거 때마다 깨끗한 새 인물을 외치며 사람을 바꿔보아도 정치 문화가 바뀌지 않은 이유는 '술통'인 정치 제도를 그대로 둔 채 새 '술'만 부으려 했기 때문이다. 제도란 한 사회의 공식적·비공식적 규칙과 시스템으로 구성원들이 약속한 틀이다. 법률처럼 강제성을 띤 공식적 제도가 있는가 하면 사회적으로 당연하게 따르는 행동양식과 같은 비공식적 규칙도 존재한다.

우리 정치가 이 지경에 이른 원인에는 다양한 견해가 있을 수 있지만 똑같은 현상이 지속적으로 반복되고 고착화되는 것을 보면 이는 개인의 문제라기보다 정치 제도라는 구조적 결함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승자가 100%의 권력을 독식하는 과반수 승자독식 구조, 1등 한 명만 선출하여 거대 양당 체제를 공고히 하는 국회의원 소선거구제, 그리고 소신 정치 대신 당권파의 눈치를 보며 공천권에 종속되게 만드는 중앙집권적 정당 구조 등이 한국 정치제도가 개선해야 할 제도적 문제들이다.

정치시장을 건전하게 유도하고 후진적 정치문화를 개선하기 위한 대안을 오직 '사람'에게서만 찾는다면 더 이상 답을 구하기 어려울 것이다. 사실 시대의 요구에 걸맞은 새 인물은 나름대로 끊임없이 수혈되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정치 혐오가 극에 달하고 정치문화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는 이유는 썩은 술통을 그대로 둔 채 내용물만 바꾸려 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단순히 인물을 교체하는 수준을 넘어 정치제도 자체를 전면적으로 개혁하는 현명하고도 현실적인 선택을 해야 한다. 매번 사람 탓만 하며 술 타령을 할 것이 아니라 술통을 바닥부터 씻어내거나 아예 새것으로 바꾸려는 본질적인 노력이 시급하다. 이제는 정말 새 술을 새 포대에 담아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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