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관람은 늘 새로운 감동을 준다. 오래전 런던 코톨드 갤러리에서의 일화다. 벽면을 빽빽이 이중으로 채운 서양 고전 초상화들 사이를 걸으며 문득 숨이 막히는 압박감을 느꼈다. 규칙과 격식으로 가득 찬 어두운 배경의 초상들이 나를 일제히 노려보는 듯해 온몸이 짓눌리는 답답함이 밀려왔기 때문이다.
그 무거움에서 나를 구해준 것은 인상파 그림들이었다. 자유롭고 생생한 붓 자국을 마주하는 순간 비로소 숨통이 트였다. 19세기 사진술의 발명으로 대상의 재현이라는 오랜 의무에서 해방된 화가들은 화면 속에서 자신만의 숨 쉴 공간을 찾아냈다. 대상과 마주하며 느낀 주관적 감응을 중시한 인상파의 태동은 서양 미술사의 거대한 전환점이었다.
이 대전환의 여정에는 동서양의 뜻밖의 문화적 조우도 있었다. 19세기 중반 유럽으로 흘러든 일본 목판화 '우키요에(浮世繪)'는 원래 도자기가 깨지지 않도록 상자 안에 구겨 넣었던 충격 흡수용 종이였다. 머나먼 이국땅의 화가들은 이 하찮은 포장지에 새겨진 파격적인 여백과 간결한 선, 대담한 구도에 큰 충격을 받았다. 당시 유럽을 강타한 일본 문화 열풍을 미술사에서는 '자포니즘(Japonism)'이라 부른다. 빈센트 반 고흐 역시 이 매혹 속에서 갈대 펜으로 풍경화 '생트 마리 해변의 어선들'을 그렸다. 물결을 따라 요동치는 선과 여백은 동양 수묵화의 오랜 정신과 깊이 공명한다. 이처럼 인간의 보편적 감각인 점과 선은 시공간을 초월해 서로 맞닿아 있었다.
과거 서구가 동양 미학을 흡수한 '자포니즘'의 시대였다면, 이제는 세계가 K-문화에 열광하고 있다. 그러나 이 도약의 이면을 냉정히 짚을 필요가 있다. 식민과 급격한 서구화를 거치며 우리의 내면이 기묘하게 분열돼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박물관 속 '순수한 한국성'이라는 박제에 갇혀 있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빌보드 순위나 할리우드의 찬사 같은 서구의 평가에 과도하게 연연한다. 이처럼 타자의 시선에만 매달리는 태도는 우리의 독창적인 시야를 스스로 가두는 결과를 낳는다.
우리 문화와 미학은 본래 흐르고 섞이는 물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 물은 어떤 그릇에 담기든 형태를 바꾸며 조화롭게 스며들면서도, 생명력의 본질을 잃지 않는다. 외부의 자극을 두려워하지 않고 받아들이면서도, 스스로 중심을 지켜내는 단단함이 진짜 한국성의 힘이다.
과거 도자기 포장지가 동양의 선을 전했듯, 이제는 디지털 플랫폼을 놀이터로 삼은 젊은 크리에이터들이 새로운 문화적 주역으로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우리의 주체적 중심을 단단히 세우고 더 과감하게 세계의 문법과 섞이며 선명하게 흐를 때, 우리 문화의 깊은 뜻은 비로소 세계 무대 위에 단단히 서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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