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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유산 '문화로 꽃피다']시골 작은 성당이 웬 산업유산? 예천 용문공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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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 주민들이 일궈낸 양잠산업 산실
새마을 운동 이전에 생긴 마을 공동체 일터
신앙 결사체와 경제 공동체의 만남 '예쁜 성당'

경북 예천군 용문면 상금곡동에 자리한 안동교구 예천성당 용문공소 전경. 노광명 로제리오 신부가 329평 대지 위에 건평 30평의 공소 건물을 지으며 신앙의 씨앗을 뿌렸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경북 예천군 용문면 상금곡동에 자리한 안동교구 예천성당 용문공소 전경. 노광명 로제리오 신부가 329평 대지 위에 건평 30평의 공소 건물을 지으며 신앙의 씨앗을 뿌렸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경상북도가 지정한 관내 산업유산 목록에는 19곳이 등재돼 있다. 그 중에 2017년에 지정된 천주교 안동교구 내 예천군 대축공소(용문공소)는 다소 생경하게 다가왔다. 예천군에 위치한 작은 성당이 산업유산에 지정된 이유는 뭘 지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18일 늦은 오후 이곳을 찾았다.

경북 예천군 용문면 금당실길 91번지. 그야말로 시골 호젓한 곳에 자리잡은 작은 성당이었다. 금곡천이 감싸고 있는 이 마을에는 이 작은 성당 뿐 아니라 대한불교 무량회 수월사를 비롯해 상금교회가 자리잡고 있었다. 3대 종교시설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은 그 옛날 큰 마을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경북 예천군 용문면 상금곡동에 자리한 안동교구 예천성당 용문공소. 1978년 기와지붕을 슬래브로 개조한 건물은 그 모습 그대로 64년의 세월을 버텨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경북 예천군 용문면 상금곡동에 자리한 안동교구 예천성당 용문공소. 1978년 기와지붕을 슬래브로 개조한 건물은 그 모습 그대로 64년의 세월을 버텨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주민들이 일궈낸 '양잠산업' 산실

예천성당 용문공소가 경상북도 산업유산에 지정된 데는 한국 현대사의 아픔과 극복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6·25 전쟁 이후 이곳 주민들이 일궈낸 양잠산업(누에고치)의 전초기지가 바로 이 작은 성당이 자리잡고 있는 곳이었다.

공소가 단순한 기도처를 넘어 지역주민들의 생계를 책임지고, 지역 산업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독특한 역사를 갖고 있다. 이 작은 성당은 그 시절을 그대로 품고 있어, 산업유산이 된 것이다.

특히 누에가 고치를 짓는 시기가 되면 온 집안이 분주해졌다. 누에가 만든 하얀 고치는 현금 수입으로 이어졌다. 자녀 학비와 농기계 구입비, 집수리 비용 상당 부분이 누에고치 판매 대금에서 나왔다. 그래서 당시 농촌에서는 "누에가 대학 보낸다"는 말까지 있었다.

전쟁이 끝난 직후인 1950~60년대, 예천군 대축마을 주민들은 극심한 가난을 이겨내기 위해 정부 장려 사업이었던 양잠산업에 뛰어들었다. 당시 누에를 전문적으로 치고, 고치를 생산할 공동 작업장이 필요했다.1960년도 당시 예천본당 제6대 주임이었던 노광명 로제리오 신부가 용문공소를 설립해 기도처이며 작업장으로 마을의 경제적 자립을 이끌었으며, 주민들에게 일자리도 제공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본격적으로 시작한 새마을 운동 이전에 마을 주민들이 앞장 서 자발적 공동 일터를 만들고, 함께 잘 살기 위해 협동정신을 발휘했다.

현재의 모습을 보면 작은 공소에 불과하지만 당시 대축공소는 마을 주민들이 직접 돌을 나르고, 흙을 이겨 지은 건축물이다. 당시 농촌 지역의 건축 방식과 생활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근대 건축 자산으로서의 가치도 높다. 건물 주변은 전원주택 정원처럼 잘 가꿔져 있다. 당시 양잠산업을 하기 위한 야외 작업공간으로 여겨진다. 현재는 성모마리아와 아기 예수상이 마당 한 켠에 자리잡고 있다.

현재도 이 마을 천주교 신자들이 미사를 드리는 용문공소 내부. 안동교구 제공
현재도 이 마을 천주교 신자들이 미사를 드리는 용문공소 내부. 안동교구 제공

◆신앙 결사체와 경제 공동체의 만남

천주교 안동교구는 현재도 이 공소에서 미사를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미사가 없는 날은 입구를 닫아, 내부 출입을 막고 있다. 때문에 밖에서 건물과 정원을 바라보며, 아주 오래 전 이 건물이 '양잠산업의 산실이었구나!' 상상하면 된다. 마을에서 만난 80대 한 할머니는 "조용한 마을이라 찾아오는 사람도 거의 없고, 신부님이 와서 미사를 드리는 날만 10명 남짓 모인다"고 소개했다.

그 시대, 이 공간엔 신앙 결사체와 경제 공동체가 공존했다. 평일 낮에는 주민들이 모여 누에를 치고 고치를 고르며 생계를 이어가는 '산업공간', 저녁이나 주말엔 함께 모여 기도를 드리는 '종교공간'이었다. 하나의 공간이 지역 사회의 경제적 번영과 종교적 공동체 역할을 동시에 했다는 점에서 역사적 보존 가치가 높다. 안동교구 관계자는 "작은 성당이 지역 공동체 발전을 했다"며 "현재도 작은 예배당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예천군도 이 공간에 대한 이용은 안동교구에 맡기고 있지만 소중한 산업유산으로 분류해 관광자원으로 발전시킬 계획도 갖고 있다. 주변에 아름다운 자연 풍광을 갖고, 맛집과 카페 등이 들어설 경우 용문공소는 더 많은 관광객이 찾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예천문화관광재단 관계자는 "예천은 조용하고 아늑한 곳들이 많은 선비의 고장"이라며 "용문공소도 소중한 관광자원의 하나"라고 자랑했다.

한편, 예천군에는 2곳의 산업유산이 있다. 용문공소는 전쟁의 폐허 속에서 양잠산업을 통해 지역 공동체의 일자리를 제공한 공간으로 자리잡고 있으며, 용궁면에 위치한 합동양조장도 65년 전통의 산업유산이자 향토 뿌리기업으로 운영되고 있다.

성모의 팔 안에 안긴 아기 예수의 얼굴이 고요하다. 신자 수는 줄고 공소는
성모의 팔 안에 안긴 아기 예수의 얼굴이 고요하다. 신자 수는 줄고 공소는 '신앙의 못자리'에서 '신앙의 묏자리'로 변해간다는 씁쓸한 말이 나오는 시절이지만, 이 작은 상 앞에 켜진 신앙의 불씨는 쉬이 꺼지지 않는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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