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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의 찰나의 순간 역사적 기록 〈특집〉 K-People : 은근과 끈기의 위대한 한국인<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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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문 창간 80주년 특별 기획 사진전…8월 11일~23일 대구문화예술회관
80년 시대정신 담은 사진 400점 …11,12,13 전시실에 11개 섹션 기획전

1962년 10월 16일 경북선 영주 철도기지 노반 공사를 벌이는 국토건설단. © 매일신문
1962년 10월 16일 경북선 영주 철도기지 노반 공사를 벌이는 국토건설단. © 매일신문

1962년 국토건설단 1962년 2월 재건 일꾼이 부족하자 박정희 군사정부는 군 미필자, 실업자, 깡패 등으로 국토건설단을 창단했다. 건설단은 군대 조직으로 편성됐다. 태백산지구 개발을 위한 경북선 연장 구간(점촌~예천~영주) 공사는 국토건설단 제5지단이 맡았다. 제5지단 단원 4천573명 가운데 대구경북 출신자는 3천615명이었다.

1966년 2월 24일 포정동 경상감영터 오른편에 자리한 경북도청사. © 매일신문
1966년 2월 24일 포정동 경상감영터 오른편에 자리한 경북도청사. © 매일신문

1966년 포정동 경북도청사 1895년 조선 8도가 13도로 재편되면서 포정동 경상감영터에 자리했던 경북도청은 1912년 새 청사를 신축했다. 7년 뒤엔 본관 동편 청사를, 3년 뒤엔 서편 청사를 지어 ㄷ자형 건물이 완성됐다. 2·28학생의거 당시 학생 집결지는 바로 이곳이었다. 건물은 1966년 4월 1일 도청이 산격동 신청사로 이전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오른쪽 앞 건물은 상품 진열소인 뇌경관(賴慶館)으로 대구 최초 컨벤션센터였다.

1968년 12월 25일 대구 동구 허허벌판에 막바지 신축 공사가 한창인 동대구역. © 매일신문
1968년 12월 25일 대구 동구 허허벌판에 막바지 신축 공사가 한창인 동대구역. © 매일신문

1968년 완공 앞둔 동대구역 1965년 대(大)대구 건설 계획에 따라 대구역을 폐쇄키로하고 대구 동부 신도시 건설 예정지에 건설한 동대구역은 1966년 7월 16일 착공, 1969년 6월 9일 완공됐다. 당초 대구역 폐쇄 계획은 무산됐지만 동대구역은 청석받이 구릉지 신천 동부를 신도시로 탈바꿈 시킨 일등공신이었다.

1970년 9월 22일 대구 남북소통 지하도 건설로 헐리는 대구역 본관. © 매일신문
1970년 9월 22일 대구 남북소통 지하도 건설로 헐리는 대구역 본관. © 매일신문

1970년 헐리는 대구역 본관 대(大)대구 건설 일환으로 1971년 4월 24일 중앙로와 산격동 도청을 잇는 남북 소통 대구역 지하도가 개통됐다. 경부선 개통으로 남북이 단절된 지 68년 만의 소통이었다. 이 과정에 1913년 르네상스풍으로 건축한 대구역 본관이 1970년 9월 안타깝게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1972년 5월 경산군(시) 남천면의 한 초가 지붕을 기와로 개량하는 주민들. © 매일신문
1972년 5월 경산군(시) 남천면의 한 초가 지붕을 기와로 개량하는 주민들. © 매일신문

1972년 새마을운동 지붕 계량 1970년 농촌에서부터 시작된 새마을운동은 근면·자조·협동 정신으로, 잘 살아보자는 운동이었다. 마을마다 지붕 계량으로 초가 지붕이 기와나 슬레이트로 바뀌자 농한기에 일손이 많이 가던 지붕 보수 대신 부업 등 생산활동 시간이 늘면서 점차 소득증대로 이어졌다.

1972년 9월 어린이 손님을 맞는 달성공원 키다리 수문장 류기성 씨. © 매일신문
1972년 9월 어린이 손님을 맞는 달성공원 키다리 수문장 류기성 씨. © 매일신문

1972년 달성공원 수문장 1970년 5월 2일 달성공원에 동물원이 개원되고 이듬해부터 공원 정문을 지킨 류기성 씨는 키가 2.25m로 거인, 키다리 아저씨 등으로 불리며 큰 인기를 끌었다. 27여 년간 달성공원 수문장 역할을 도맡아 1970~80년대 달성공원을 대표하는 마스코트였다.

1975년 5월 8일 대구역 광장에서 열린 대구시민 반공궐기대회. © 매일신문
1975년 5월 8일 대구역 광장에서 열린 대구시민 반공궐기대회. © 매일신문

1975년 반공궐기대회 1960년대 베트남 파병 저지를 위한 북한의 잇따른 도발에 이어 1975년 3월 북한이 판 제2땅굴이 발견되자 5월, 경북 22개 시·군에서 일제히 반공궐기대회가 열렸다. 대구대회에는 직장 예비군, 학생, 민간단체 등 45만 명이 참가해 대구역 광장동서남북 1km 구간 도로를 가득 메웠다. 구호는 '반공(反共)'을 넘어 '멸공(滅共)'이었다.

1987년 6월 26일 대구에서 열린 국민평화대행진에서 경찰이 쏜 최루탄에 흩어지는 시민들. © 매일신문
1987년 6월 26일 대구에서 열린 국민평화대행진에서 경찰이 쏜 최루탄에 흩어지는 시민들. © 매일신문

1987년 6월 항쟁 1987년 6월 26일 국민평화대행진이 전국 37개 도시에서 동시다발로 열렸다. 학생, 종교인, 넥타이 부대, 주부 등 전국에서 100만여 명이 참가해 6·10 항쟁 이후 최대 규모였다. 민주화 요구가 거세지자 민정당 노태우 대표는 시국 수습을 위해 6·29 선언을 발표했다. 주요 내용은 대통령 직선제 개헌, 김대중 사면·복권, 시국사범 석방 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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