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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80주년 기획] 다시 재건하는 TK정치…"대한민국 보수 미래 좌우할 시대적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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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K, 이명박·박근혜 등 대통령 5명 배출하며 대한민국 정치사 좌우
강재섭·김윤환·박철언·이상득 등 정치적 거물들 맹활약
보수정당 TK 당대표 2006년 이후 단 한 명도 없어
전문가들 "공천 시스템 개혁, 경쟁력 강화, 인재 양성 등 대혁신 필요"

2004년 3월
2004년 3월 '천막당사' 시절의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당 현판을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

대한민국 보수 정치의 뿌리를 세우고, 정권 창출과 국가 운영 중심으로서의 지위를 공고히 해온 대구경북(TK) 정치가 거대한 시대적 과제 앞에 섰다. 한때 TK 정치는 대통령과 당 대표, '킹메이커'를 잇달아 배출하며 '보수의 심장'을 뛰게 했으나, 오늘날 TK 정치는 과거의 영광을 이어가지 못하고 있다. 이제는 중앙 정치에서 주도권을 잃은 채 낙하산 공천과 인재 고갈, 안일한 정치 풍토라는 한계에 직면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을 뿐이다. 전문가들은 한 목소리로 지금 TK 정치의 재건은 지역의 과제를 넘어, 다시 대한민국 보수를 일으켜 세우고 보수 정치의 미래를 좌우할 사활적 시기라고 제언했다.

◆보수의 중심, 거인들의 시대

5명의 대통령을 배출한 TK는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대한민국 정치사를 좌우한 거인들을 키워낸 주목받는 무대였다. 대권주자부터 정국의 판도를 읽고 조율하던 '킹메이커', 의회의 거두로 현대사에 큰 족적을 남긴 명사들이 대구와 경북에 그 정치적 기반을 뒀다.

최근까지 그 영향력을 보여주는 인물이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이다. 포항 출신인 이명박 전 대통령은 서울시장을 거쳐 압도적 표차로 정권을 창출하며 민주화 이후 첫 TK 출신 대통령이 됐다. '선거의 여왕' 박근혜 전 대통령 역시 달성을 정치적 고향으로 삼아 대한민국 첫 여성 대통령으로 이름을 새겼다.

정치적 거물들의 존재는 대권 주자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당을 책임지고 이끌던 강재섭 전 한나라당 대표, 그리고 '허주'(虛舟)라는 호로 더 잘 알려진 김윤환 전 의원은 전두환-노태우-김영삼 세 정권에서 중앙 정치를 쥐락펴락하던 전략가이자 '킹메이커'의 원조 격이었다. 박철언 전 정무장관,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 등 중앙정치권에서도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던 인사들이 적지 않았다.

이 시기의 TK는 단순한 보수 텃밭이 아니었다. 대한민국 정국의 패러다임을 좌우하며, 정권 창출의 중심축이자 보수 이념의 사상적·정치적 주춧돌이자 대들보 역할을 하던 곳이 바로 TK였던 것이다.

2005년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이 매일신문 등 지역언론사 사장단을 초청, 마무리 단계에 들어선 청계천을 소개하고 있다. 매일신문DB
2005년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이 매일신문 등 지역언론사 사장단을 초청, 마무리 단계에 들어선 청계천을 소개하고 있다. 매일신문DB

◆허울만 남은 '보수의 심장'

과거의 영광은 이제 빛바랜 사진첩 속 얘기가 됐다. TK가 보수정당의 마지막 당대표를 배출한 것은 20년 전인 2006년 강재섭 전 한나라당 대표가 마지막이다. 강산이 두 번 바뀌는 동안 중앙 정치 무대 중심에서 깃대를 잡을 만한 리더십을 단 한 명도 보여주지 못했다는 뜻이다.

정치평론가 이주엽 엘엔피파트너스 대표는 정치적 구심점이 아닌 '하위 파트너' 격으로 전락한 TK 정치권의 한계에 공감했다. 이 대표는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 시기에는 TK 대통령에 TK 당대표가 겹치는 것이 부담이었을 수 있지만, 2017년 이후는 얘기가 좀 다르다"며 달라진 풍경을 지적했다. 그는 "TK에서 당대표 도전 자체를 많이 하지 않았고, 외려 TK의 지원 하에 당대표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선수는 높아도 중앙정계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중량감 있는 정치인이 없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2021년 국민의힘 1차 전당대회와 그해 대선 후보 선출 과정과 결과 역시 달라진 TK의 위상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당시 TK를 대표하는 최다선(5선) 중진 주호영 의원이 지역에서 유일하게 당대표 선거에 나섰지만, 헌정사상 최초로 원외이자 30대 신예였던 이준석 후보에게 패했다. 당내 주류를 자처하던 TK 정치권의 한계와 주도권 상실의 결과로 보일 수 있는 장면이었다.

TK 정치의 약화는 지역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고 보수 진영 전체의 비극으로 이어졌다. 보수의 중심이 허약해지자 진영 전체가 구심점을 잃고 큰 선거마다 인물난 속에 무기력하게 흔들렸다. 스스로 인재를 키워내지 못한 보수는 당의 정체성과 전혀 맞지 않고, 검증되지 않은 '용병 정치'에 의존, 최근 보수 진영이 마주한 처참한 파국을 불렀단 평가를 받고 있다.

◆다시 재건하는 TK 정치

전문가들은 TK 정치 재건을 위해선 공천 시스템 개혁과 인재 양성, 당내 민주주의 확립을 통한 정치 생태계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TK가 경쟁력을 강화를 통해 전국적 리더를 키우고, 보수의 가치와 정체성을 다시 세우는 혁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엄기홍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TK 정치가 쇠퇴한 배경으로 "보수 정당이 지도자 역할을 할 수 있는 국회 다수당을 못하고 있는 상황인 데다, 공천만 받으면 당선된다는 인식이 지역 정치인의 경쟁력을 떨어뜨렸다"며 "온실 속 화초처럼 다른 정당, 다른 의원들과 경쟁할 수 있는 역량이 많이 손실됐다"고 분석했다. 이어 "TK에서는 경쟁적 인물 양성을 게을리하거나, 오히려 자신과 경쟁할 수도 있는 잠재적 경쟁자를 쳐내는 것이 더 우선적인 문화로 굳어졌다"고 덧붙였다.

엄 교수는 "TK 의원들이 위기감과 현실을 자각해야 TK 정치가 복원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며 "이제는 더 이상 보수의 심장이 대구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자각할 필요가 있다. 보수의 심장인 대구와 경북이 사실상 밑바닥부터 흔들리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게 이번 대구시장 선거 결과의 중요한 지표"라고 강조했다.

국민의힘 대구시당에 지역 국회의원들의 사진이 걸려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국민의힘 대구시당에 지역 국회의원들의 사진이 걸려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또한 정치에도 수도권 쏠림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이승근 계명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TK는 물론 다른 지역에서도 비슷한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TK출신이지만 수도권에서 교육받고 경제 생활하고 정치 생활하고 전국적 지명도를 키우는 정치인들이 많아진 것"이라며 "과거만 하더라도 지역 우수 정치 인재들이 중앙무대에서 활약하던 시대가 서서히 저물어 가는 형태"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이대로 가면 고착화될 가능성이 크다"며 "정치 역량이 지역 경제와 직결되고 있는 만큼, TK 의원들이 지분 확보를 위해 당 안팎에서 전투력을 키워 역할을 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김용찬 대구가톨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당내 민주주의 회복과 체계적인 정치인 육성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유럽 정당처럼 정치학교 등을 통해 정치 지도자를 장기적으로 육성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명망가 중심의 정치 엘리트 구조는 사실상 후진적인 정치 시스템"이라며 "TK 의원들도 자기 정치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공천권자에게 줄 서는 인맥 중심의 구조가 아니라 당내 민주화를 통해 뼈를 깎는 혁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당원 의견이 반영되는 시스템으로 바뀌어야 의원들도 태세 전환을 하고 노력할 수 있다"며 "이러한 과정이 없었다 보니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분노한 지역 표심이 심판 투표 성격으로 가게 된 것"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시대가 빠른 속도로 변화할 때 트렌드를 못 쫓아가는 것은 보수의 가치가 될 수 없다"며 "보수의 정체성을 경제 발전과 실용이라는 본래 가치에서 다시 찾아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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