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오후 3시 찾은 남구 한울림소극장. 공연 시작 전부터 빈자리를 찾기 어려울 만큼 75석의 객석은 관객들로 가득 찼다. 막이 오르자 한 젊은 기자와 편집장이 기자 회견장에 선다. 누구도 거스르지 않았던 정부의 '보도지침'을 세상에 공개하기 위해서다. 이후 무대는 법정이 되고, 쉴 틈 없이 말들이 오간다. "이것은 보도지침인가, 보도협조사항인가. 어디까지는 쓰고, 왜 어떤 것은 쓰지 말아야 하는가. 신문은 언제나 진실만을 말하는가. 현실과 타협하는 것은 잘못인가. 신념과 현실 사이에서 인간다운 선택은 무엇인가". 말들은 언론 자유를 넘어 끊임없는 생각과 고민으로 확장된다.
극중 법정에 선 김주혁 기자와 김정배 편집장, 변호사 황승욱, 검사 최돈결은 대학 시절 같은 연극 동아리에서 함께 청춘을 보낸 친구들이다. 무대는 현재의 법정과 과거의 동아리방, 그리고 극장을 넘나들며 이들이 어떤 시간을 지나 서로 다른 '말'을 갖게 됐는지를 보여준다. 다시 법정으로 돌아와 이들의 은사이자 재판을 이끄는 판사 원달은 네 사람에게 독백으로 최후의 변론을 해보라고 말한다. 각자의 신념과 삶이 응축된 독백들은 관객에게 또 다른 질문으로 남았다.
2016년 초연 이후 10년째 대학로에서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연극 '보도지침'이 한울림 소극장전을 통해 대구 관객들과 만났다. 해당 작품은 1986년 김주언 한국일보 기자가 당시 군사정권의 언론 통제 문건인 '보도지침'을 월간 '말'지를 통해 폭로한 실제 사건과 이후 재판을 재구성했다.
주인공들을 대학시절 동아리 친구 사이로 설정한 것은 각 인물이 살아온 시간이 어떻게 서로 다른 '말'을 만들어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서다. 2024년부터 연출을 맡은 정철 연출은 "주체성이 아직 형성되지 않은 순수한 상태에서 만난 친구들이 사회를 경험하며 각자의 언어를 갖게 되는 것을 시각화하는 데 집중했다"고 전했다.
초연 이후 10년 동안 공연이 이어지는 이유에 대해서는 "시대마다 더 크게 들리는 말이 달라진다"고 말했다. 그는 "초연 때는 주혁의 말이 관객들에게 가장 크게 다가왔다면, 어떤 시즌에는 판사 원달의 혼란이, 또 다른 시즌에는 정배의 독백이 더 깊게 전달됐다"며 "시대는 변하지만 공연으로 계속 뭔가를 말하고 있고, 그 시대에 맞게 관객들이 받아들이는 지점도 계속 달라지는 것 같다"고 했다.
대구 출신인 정 연출은 서울에서 활동한 지 10년이 됐지만, 이번 공연과 제20회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 창작지원작 '성주: 집 잃은 신의 서울 표류기'를 통해 최근 대구를 자주 찾았다.
그는 "대구는 대명공연거리를 중심으로 공연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고 극장과 연습실 환경도 좋은 편"이라며 "좋은 콘텐츠와 작품을 만들고 싶은 마음은 지방과 수도권 모두 같다. 젊은 창작진을 위한 지원이 더욱 활성화된다면 어디서든 좋은 작품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끝으로 정 연출은 오늘날 소극장의 거리감이 더욱 필요한 시대라고 봤다. 그는 "요즘은 누군가 하는 말을 길게 들어주는 시대가 아니다"라며 "연극은 누군가 오롯이 말하고, 끝까지 들어줄 수 있는 시간"이라고 말했다.
이어 "스마트폰과 여러 기계들이 사람 사이의 거리를 만들고 있지만, 극장에서 배우와 관객이 같은 공간에서 서로의 말을 주고받는 경험은 시대가 지나도 변하지 않을 소중한 시간"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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