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국심사〉(작·연출 하수민, 드라마터그 이성곤, 조명디자인 최보윤, 무대디자인 남경식, 제작 PD 정혜리)는 전작 〈새들의 무덤〉 이후, 즉각반응 하수민 연출의 스타일을 인상적으로 보여준 공연이다. 공연은 산업재해로 아들을 잃은 한 아버지가 생전 아들이 가고 싶어 했던 나라를 대신 찾아 여행 비자로 입국심사를 받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작품의 모티브는 한국 사회 산재사고를 다룬 〈엔드월-저 벽 너머엔 뭐가 있을까?〉에서 산재로 목숨을 잃은 아성과 아버지가 등장하는 것을 보면 '엔드월' 연작이라 할 수 있고, 나아가 작품은 2018년 벨기에 샤를루아 공항에서 슬로바키아 국적의 요제프 호바네츠(Jozef Chovanec)가 공항 경찰에 의해 장시간 제압된 끝에 사망한 사건을 병치한 공연이다.
두 가지 소재가 중첩되어 있는 작품 모티브가 무대로 발화하는 힘은 한국 사회 산업재해의 구조적 모순을 다루는 '엔드월' 시즌2 정도로만 좁혀 이해하기에는 문제의식이 넓게 느껴지기도 한다. 배낭을 메고 입국심사를 집요하게 받는 극중 인물 재상(장재호 분)을 통해 국가 권력과 민주사회, 독재 권력과 감시, 디지털로 통제되는 구조적 시스템, 인권유린의 조직적 은폐가 국가 권력에 의해 어떻게 길들여지는지, 극중 인물이 처한 폭력적인 입국심사의 시간만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런데, 100분 동안 이어지는 긴장감과 무게감이 만만치 않다. 넓은 무대, 마치 자유의 공간에서 점차 좁혀오는 인권유린의 폭력과 통제, 감시를 받는 분위기라고 할까. 소재 유형이 비슷한 작품들이 대체로 국가폭력과 통제사회를 디스토피아적 상상력으로 형상화한다면 〈입국심사〉는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현실적 제도를 통해 국가 권력이 개인을 어떻게 감시하고 통제하는지를 드러낸다. 다만 입국 국가는 아들 아성이 평소 가고 싶어 했던 바다와 숲, 산이 어우러지고 끝없이 수평선이 펼쳐진 자연의 나라로 그려지면서도 특정되지 않는다.
◇'하수민 식' 감시와 통제, 입국심사의 국가적 폭력
극장은 '즉각반응 에어라인에 탑승하라는 안내 음성'으로 시작되는데, 관객은 출국장과 입국심사장을 가상으로 바라보면서도 극중 인물 재상(장재호 분)과 동일하게 심리적으로 갇힌 구조 속에 놓인다. 무대는 특별한 구조가 없다. 스크린과 탁자, 특정할 수 없는 국가 권력의 소리, 의자 몇 개, 탁자 정도로 전환되는 세컨더리룸, 철제 침대만 놓인 구금실, 통역관의 집 정도가 장면 전환의 무대 공간으로 분할되는 정도이고, 장면과 특정 인물의 상황에 따라 영상 화면으로 확장된다. 마치 인간의 자유와 민주주의가 권력에 의해 유린당하는 것처럼. 무엇보다 국가 권력이 개입하는 입국심사 과정에서 명령과 감시, 통제와 제도가 작동하는 권력의 이미지를 시각적으로 확장하고 소리로 증폭시키는데, 입국심사를 둘러싸고 있는 극 중 공간은 CCTV와 경고문, 생체정보 촬영 장치로 이루어진 감시와 통제로 제한된 공간이다.
넓은 공간에서 좁혀오는 입국심사의 구조적 아이러니가 전체주의적 권력과 폭력적 위계, 제도의 폭력성을 바라보게 하는데, 질문의 권리는 경찰 권력만 갖고, 재상은 답변할 의무만 부여받는다. 그때마다 재상은 "제가 왜 이런 질문을 받아야 하죠?거부 합니다"라고 입국심사 절차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극이 쌓여가는 시간 속에서 심리적으로 조여오는 긴장감은 지루할 정도로 숨이 막힌다. 누구나 경험해 본 것처럼 특정 국가에 입국할 때 출입국장에서 의례적인 질문을 받을 수도 있지만, 범죄자처럼 머그샷을 찍고 제한된 공간에서 취조받듯 입국심사를 받게 된다면 심리적 상황은 달라지지 않을까.
재상은 입국심사를 받지 않으면 강제 추방을 한다는 위협 속에서 여행 목적은 물론 가족관계와 경제 상황, 아들의 죽음, 딸의 병력, 아들의 산업재해 사망에 대한 진실을 밝히려다 경찰 조사를 받은 이력, 심지어 마지막 질문인 성적 취향에 이르기까지 사적인 내용까지 끝없이 심문받게 된다. 연극은 입국심사를 받는 시간 동안 아버지로 분한 극중 인물 재상(장재호 분)과 동일한 심리로 강제 추방을 당할지 모르는 불안 속에서 끝없이 이어지는 심문을 지켜보게 한다. 때로는 답답하고 숨이 막혀오기도 한다. 하수민 연출의 의도다. 재상과 동일한 심리적 압박감을 관객들이 체감하도록 하는 것.
무대 후면을 채운 대형 이중 스크린은 때로는 이국적인 풍경으로 전환된다. 아들이 꿈꾸었던 여행의 시간을 환기하고, 과거 기억을 영상으로 소환하거나 인물들의 심리 상태를 분할 화면으로 드러낸다. 무대의 영상 연출기법이 특별한 것은 없다. 하지만, 하수민 연출은 한 단계 더 들어가 상당히 고민한 흔적을 보여준다. 극중 인물의 변화하는 감정과 심리를 직접 드러내기보다, 각기 다른 각도에서 드러나지 않는 극 중 인물들의 심리 상태를 시간차를 두고 클로즈업하기도 하고, 때로는 표정의 좌우 면을 나누어 보여주기도 한다. 마치 현장에서 카메라 세 대가 서로 다른 방향에서 영상 구도를 잡아 편집한 뒤 스크린으로 송출하는 듯한 분위기다. 카메라는 배우를 과도하게 조이지 않으면서도 인물의 미세한 심리 변화를 놓치지 않는다.
◇수평선 너머의 자유
관객은 입국심사를 받는 극중 인물과 동일한 심리적 압박을 느끼게 되고, 국가폭력과 제도적 폭력 앞에서 무력한 개인이 된다. 극 후반에는 정체불명의 목소리가 등장하면서 경찰은 복종하는 존재로 전락하고, 히틀러식 경례와 재상을 향한 사적 영상 유포 협박은 인권을 짓밟는 시스템이 개인을 어떻게 길들이고 복종시키는지를 압축적으로 형상화된다. 하수민 연출의 칼날은 외교부의 부재를 향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을 무력화시키는 반민주적 국가 권력의 인권유린과 권위주의적 위계 시스템을 겨눈다. 극이 종점을 향할 즈음에야 하수민 연출이 굳이 이 작품을 대극장 공간에 배치한 이유를 눈치채게 된다. 수평선을 바라볼 수 없는 자유민주주의 안에 갇힌 인권의 폭력성이다.
마지막 극 중 장면에서는 재상이 입국이 허가된 뒤 교포 통역사(이정미 분)의 대사에서 '수평선'의 의미가 살아난다. "저도 이 나라의 바다, 하늘, 나무 때문에 이민 왔어요. 그런데 살다 보니 더 좋은 게 생겼어요.… 수평선이요. 나무, 하늘, 바다는 날씨에 따라 바뀌는데 멀리 보이는 수평선은 그대로죠." 수평선은 국가 권력과 시민, 민주사회라는 바다가 맞닿는 경계이자 공존의 공간이다. 그럼에도 세계 어디에선가는 여전히 벨기에 샤를루아 공항에서 벌어진 요제프 호바네츠 사건과 같은 국가폭력이 반복되고, 한국 사회도 평택항 산재사고와 같은 노동의 죽음을 완전히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그런 만큼 하수민은 두 가지 실제 사건을 중첩해 한국 사회의 산업재해와 노동 문제를 넘어, 국가 권력이 생산하는 제도적·구조적 폭력과 인권 침해, 권위주의적 통제와 위계적 폭력이 국가 시스템 속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입국심사〉를 통해 드러내고 있다.
다만 이 작품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재상이 입국심사를 반복해서 받는 과정이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또한 재상의 아버지가 산업재해로 세상을 떠난 아들 아성을 대신해 여행을 떠난 나라가 실제 요제프 호바네츠 사건이 발생한 벨기에라는 점, 평택항 산재사고를 연상시키는 극 중 인물들과 벨기에 샤를루아 공항 사건을 병치한 설정은 두 사건이 유기적으로 결합되기보다는 다소 병렬적으로 제시된 인상도 남는다. 그럼에도 이러한 맥락의 논리를 배제하고도 하수민 연출의 〈입국심사〉는 하수민 스타일의 무대를 인상 깊게 보여준 작품이라 할 만하다.
후반 장면은 입국심사의 주제를 가장 선명하게 응축한다. 심문을 마친 경찰은 "기록 파일은 제가 책임지고 삭제하겠습니다. 상사를 고발하겠습니다"라고 말한다. 자신 역시 국가 시스템을 구성하는 한 사람이었음을 고백하는 장면이다. 이어 재상이 "이유가 뭔데요?"라고 묻는다. 이어 경찰은 "그건 당신이 했던 말로 답할게요. 거부합니다."라고. 마지막 장면에서 재상은 수평선이 펼쳐진 진정한 자유와 민주사회의 바다를 향해 천천히 걸어가 다이빙하듯 물속으로 몸을 맡긴다.
재상이 향하는 바다는 인간의 자유와 존엄이 회복되는 수평선 너머, 희망의 공간이다. 극중 인물은 재상, 경찰, 통역관, 영상으로 등장하는 아들 아성 정도이지만, 실제 극을 끌고 가는 배우는 재상 장재호, 교포 통역사 이정미, 입국심사 경찰관 이나리 등 세 명이다. 100분 동안 경찰관은 영어로 심문을 이어가며 상당한 대사량과 집중력을 보여준다. 특히 경찰관 역시 위계적 폭력의 시스템 속에서 긴장한 채 길들여진 존재임을 형상화하는 연기가 인상적이다. 교포 통역관은 재상의 답변을 차분하게 옮기며 무대를 빈틈없이 채워가는 안정적인 연기를 보여준다. 반복되는 질문과 답변만으로 극을 끌고 가는 세 배우의 연기는 집중력과 밀도를 보여주면서도 <입국심사>는 배우 장재호의 존재감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수평선을 꿈꾸듯 넓은 자유 사회를 향해 헤엄쳐 나가고 싶지만 끝내 벗어날 수 없어 보이는 무대 공간은 자유와 국가폭력의 긴장을 압축해 놓은 하나의 상징적 공간으로 유기적으로 기능하게 된다. <입국심사>의 장점은 국가 권력의 폭력성과 인권유린의 모순을 물리적 폭력이나 자극적인 장면으로 과장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하수민 연출은 입국심사라는 일상적 시스템 자체를 폭력의 장치로 전환해 민주주의 사회에서 제도는, 언제든 인간의 자유와 인권의 존엄을 억압하는 시스템이 될 수 있음을 설득력 있게 드러낸 공연이다. 과도한 폭력적 입국심사 "거부한다고 말해주세요."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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