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의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1978년은 폭풍 전야처럼 비교적 고요한 한 해였다. 이듬해 1979년 10·26 사건과 부마민주항쟁 등 굵직한 정치·사회적 격변을 앞두고 있었지만, 1978년은 전국적으로 정치적 이슈나 대형 사건·사고가 상대적으로 적었다. 대구·경북에는 역사적 의미를 지닌 반가운 소식이 잇따랐다. 신라와 대가야의 찬란한 문화를 증명하는 국가급 문화유산이 잇따라 발굴되면서 한국 고대사 연구의 지평을 넓히는 전기가 마련된 것이다.
1978년 발굴된 경주 황룡사지와 고령 지산동 고분군은 오늘날에도 신라와 가야사를 연구하는 핵심 유적으로 평가받는다. 신라를 대표하는 국가 사찰인 황룡사에서는 건립 비밀을 간직한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었으며, 대가야 왕릉으로 추정되는 고령 지산동 32~35호 고분에서는 당시 왕권과 문화를 보여주는 귀중한 유물들이 대거 출토됐다. 국가유산청 역시 두 유적을 한국 고대문화 연구의 중요한 전환점으로 평가하고 있다.
◆황룡사 9층목탑 심초석 아래 사리함 발견
"주춧돌 구덩이 안에 금과 은으로 만든 고좌가 있고, 그 위에는 사리 유리병이 봉안돼 있었는데, 그 물건이 불가사의했다."
황룡사 '찰주본기'에 기록된 이 문장은 1978년 7월 28일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황룡사 구층목탑 심초석 아래 사리장엄구를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이날 발굴은 단순한 문화재 발견을 넘어 1천300년 전 신라인들의 불교 신앙과 국가적 염원을 확인할 수 있는 역사적 사건이었다. 출토된 유물은 신라인들이 실제 사용했던 생활용품과 의례용품으로, 당시 신라 사회와 문화를 이해하는 귀중한 실증 자료가 됐다.
발굴된 유물은 실로 다양했다. 사리기(舍利器)로 추정되는 중국제 백자호(白磁壺, 달 모양의 백색 항아리)를 비롯해 청동거울, 금동 귀걸이, 유리구슬 등 3천여 점이 쏟아져 나왔다. 특히 사리함 안에서는 황룡사 구층목탑의 창건 과정과 공사 경위를 상세히 기록한 '금동찰주본기'가 발견돼 학계를 놀라게 했다.
이 탑지는 현재까지 확인된 고대 탑지 가운데서도 최고 수준의 기록문화유산으로 평가받고 있다. 지금도 국가 차원의 신라왕경 복원정비사업 핵심 과제로 지정돼 복원과 학술 연구가 이어지고 있으며, 당시 출토된 유물은 국립경주박물관과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국립중앙박물관 등에 보관돼 있다.
황룡사 9층목탑은 선덕여왕 때 당나라에서 수학하고 온 자장율사의 발원으로 건립된 신라 최대의 목탑이었다. 이후 효소왕 7년(698년) 낙뢰로 소실된 뒤 여러 차례 중건됐지만, 고려 고종 25년(1298년)에 몽골 침입으로 다시 불탄 이후 끝내 복원되지 못했다.
◆'철의 왕국' 대가야, 고령 지산동 금동관 출토
1978년은 지역 문화재 발굴사에서 특히 의미있는 해였다. 황룡사지 발굴의 감동이 채 가시기도 전인 9월 24일, 고령 지산동 32호분에서는 금동관과 갑옷을 비롯한 대가야 최고 수준의 유물이 대거 발견됐다. 이 가운데 금동관은 훗날 국가 보물로 지정됐다.
32호분에서는 금동관을 비롯해 대도와 소도, 철촉 등 각종 무기류, 갑옷과 투구 등 무장구, 안장과 등자, 말 장식 등 마구류가 함께 출토됐다. 긴목항아리와 짧은목항아리, 굽다리접시, 소호(小壺), 모자합(母子盒) 등 다양한 토기류는 물론 널못과 꺾쇠까지 발견되면서 당시 장례문화와 생활상을 복원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했다. 그 밖에도 널못과 꺾쇠가 출토됐다.
이후 국가유산청은 가야문화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대표 유물로 4∼5세기 유물인 ▷고령 지산동 32호분 출토 금동관 ▷부산 복천동 22호분 출토 청동칠두령(靑銅七頭領) ▷'부산 복천동 38호분 출토 철제갑옷 일괄을 각각 보물로 지정했다.
이들 문화재는 '철의 왕국'으로 불린 가야가 뛰어난 철 제련 기술뿐 아니라 정교한 금속공예와 예술성을 갖춘 문명국가였음을 입증하는 대표적인 유산으로 평가된다. 아울러 오랫동안 상대적으로 저평가됐던 가야 문화의 역사적·학술적·예술적 가치를 새롭게 조명하는 계기가 됐다.
그 이전까지 국보와 보물로 지정된 가야 유물은 국보 제138호 '전(傳) 고령 금관 및 장신구 일괄', 국보 제275호 '기마인물형 뿔잔', 보물 제570호 '전(傳) 고령 일괄 유물' 정도에 불과했다. 국가유산청 관계자는 "가야시대 금동관은 출토 사례 자체가 매우 드물어 고령 지산동 금동관은 희소성이 매우 높다"며 "5~6세기 대가야 관모 공예를 대표하는 문화재"라고 평가했다.
손정미 고령대가야박물관 학예연구사는 "대가야는 한반도 동남부에서 강력한 세력을 형성한 국가였으며, 당시 금속 제련 기술이 얼마나 뛰어났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며 "가야 유물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와 보물 지정의 첫 결실이라는 점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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