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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오의 대구경북의 집이야기] 쉼으로 물든 집, 영양 서석지 경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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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경정은 연잎이 물결을 이루는 서석지 위에 핀 고결한 인격 같다.
마치 경정은 연잎이 물결을 이루는 서석지 위에 핀 고결한 인격 같다.

◆서석, 상서로운 돌이 쉬는 집

타오른다. 거리가, 마을이, 산이, 언덕이. 몇 걸음 걷지 않았는데 땀이 등줄기를 적신다. 사람들의 말이 뜨겁기는 마찬가지다. 폭염만이 세상을 태우는 게 아니다. 정체 모를 화가 서로를 향해 불을 뿜는다. 화탕지옥이 따로 없다. 이럴 때는 쉬어야 한다. 쉼을 쉬이 허락하지 않는 대처를 뒤로하고 영양으로 향했다. 서석지(瑞石池)를 눈에 담고 그곳에서 쉬고 싶어서다.

마을 어귀부터 기이한 바위들이 나그네를 맞는다. '입암'이라는 마을 이름이 괜히 붙여진 것이 아니다 싶다. 연당마을에 들어선다. 하루 종일 하늘에 내걸린 태양이 쏟아내는 볕은 여전히 따갑다. 마을에 들어서니 마음에는 그늘이 든다. 마을 입구에는 커다란 연꽃 조형물이 서 있고, 그 곁에는 '서석지 외 16수 이야기길'을 알리는 안내판이 있다. 연당마을이라니, 이름만 들어도 이 마을 어디쯤 연꽃 핀 못 하나 있을 것 같다.

고샅길로 조금 더 걸으니 서석지 담장이 나타나고, 그 너머로 담보다 훨씬 높은 은행나무가 솟아 있다. 400년이 족히 넘는 세월을 견딘 나무다. 높이가 20m에 이르고 둘레가 6m쯤 된다는 노거수다. 서석지의 사계를 사백 번을 훨씬 넘게 지켜본 거목이다. 녹음이 짙은 가지를 펼친 은행나무가 먼 길을 달려온 나그네에게 어서 그늘로 들어오라 손짓하는 듯하다.

사주문을 거쳐 서석지 안으로 들어서자, 못이 보이고 그 너머로 경정(敬亭)이 눈에 들어온다. 못은 연으로 가득하다. 한창 꽃 피는 때는 지났는지 꽃은 꽤 졌지만, 다행히 분홍빛 몇 송이가 남았다. 어떤 연잎은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고, 어떤 잎은 수면에 느긋하게 몸을 눕힌다. 바람이 불자 가만있던 연잎들이 잠에서 깬 사람처럼 한꺼번에 몸을 뒤척인다. 그 움직임을 보고 있자니 지친 마음이 조금씩 위로받는다.

소박한 여름꽃 사이로 주일재가 보이고 그 앞에는 네 벗을 품은 사우단이 있다.
소박한 여름꽃 사이로 주일재가 보이고 그 앞에는 네 벗을 품은 사우단이 있다.

이 못과 원림에 정성을 들인 사람은 석문(石門) 정영방(鄭榮邦, 1577~1650)이다. 그의 삶은 평탄하지 않았다. 임진왜란의 참화가 그의 가족을 비껴가지 않았다. 피란길에서 가족을 잃기도 한다. 광해군 시기의 정치적 혼란을 겪으면서는 벼슬길에서 물러났다. 영양으로 내려와 은거하던 그는 1637년 무렵부터 서석지를 꾸민다. 험한 세월을 지난 정영방에게 자신이 편히 머물 곳이 필요했으리라.

그 내력을 알고 경정을 다시 바라본다. 눈앞의 정원은 평온한 시대가 거저 내준 선물이 아니다. 독한 난세를 살아낸 사람이 애써 마련한 쉼터다. 정영방은 서석지에서 책을 읽고 시를 지었으며 산천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세상이 소란할수록 서석지에 머물렀다. 못을 들이고 돌에 이름을 붙이고 나무와 꽃을 벗 삼으며, 그는 흔들리는 세상과는 다른 삶을 이 작은 원림에 펼쳐놓았다.

◆눈이 먼저 쉬는 집

경정은 못을 곁에 두고 있다. 아니, 곁에 두었다기보다 못을 안고 못에 기대어 서 있다. 정면 4칸, 측면 1칸 반에 팔작지붕의 구조로 축조된 경정의 전면에는 툇마루가 놓여 있다. 전면의 여닫이문들은 모두 열려 있어 못 위에 드리워진 풍경이 바로 눈앞에 펼쳐진다. 못을 멀찍이 바라보는 집이 아니라 그 기척을 안으로 불러들이는 집이다.

못을 천천히 돌아 경정으로 오른다. 밖에서 바라보던 경정과 안에 들어와 만난 경정은 사뭇 다르다. 마루에 앉는 순간 경정의 안과 밖을 나누던 경계도 희미해진다. 기둥과 기둥 사이로 연잎이 가득한 못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조금 전 그늘을 내주던 은행나무도 한결 깊어진 자태로 다시 눈에 찬다. 경정 안에 있으니 비로소 서석지의 전경이 보인다.

'경정'의 '경'은 공경할 경(敬)이다. 정영방에게 '경'은 마음을 흐트러뜨리지 않고 자신을 살피는 공부의 화두다. 서석지에 따로 마련한 서재를 '한 가지 뜻을 받는다'는 뜻의 주일재(主一齋)로 붙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영방은 이곳에서 경을 공부했고, 못을 바라보며 그 뜻을 되새겼을 것이다. 그러니 서석지를 성리학의 이치가 녹아든 장소로 읽는 것은 당연하다.

못을 향해 활짝 열린 경정은 편안한 쉼이 드나드는 집이다.
못을 향해 활짝 열린 경정은 편안한 쉼이 드나드는 집이다.

하지만 그 뜻만으로 서석지와 경정을 읽고 싶지 않다. 막상 마루에 앉은 나그네를 붙잡는 것은 성리학의 이치가 아니다. 눈앞에 가득 찬 출렁이는 여름 물결이다.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연잎의 색채가 달라지고, 햇빛은 못 위에서 잘게 부서진다. 나무는 제 그늘을 못에 밀어놓고, 열린 경정으로 발을 들인 바람은 나그네의 땀을 식힌다. 경정의 '경'도 어쩌면 이렇게 그윽한 풍경에 마음을 낸 자의 여유에서 시작되는 게 아닐까.

마루에 손을 얹어본다. 나뭇결을 쓰다 듬으니 노모의 손을 만지듯 정겹다. 사람의 흔적을 수도 없이 받아낸 마룻장은 새것처럼 반듯하지 않아서 오히려 마음이 놓인다. 사백 년 전의 선조들도 이곳에서 공부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책에서 눈을 떼 못을 바라보고, 마루를 내려서서 뜰을 걸었을 것이다. 이렇게 잠시나마 편히 쉬는 것이 진짜 공부였는지도 모른다.

경정에 오른 나그네는 서둘러 일어날 마음을 잊는다. 아니, 일어날 수가 없다. 가만히 앉아 있으니, 서석지의 풍경이 살아 움직인다. 죽은 못이 아니다. 연잎은 바람이 간지러운지 수시로 몸을 뒤척이고, 은행나무는 노거수의 품위로 서석지를 내려다본다. 물빛마저 시시각각 달라진다. 경정에서 바라보는 여름은 한순간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경정에서 내려 못 쪽으로 향한다. 서석지라는 이름을 얻은 돌들을 보고 싶어서다. 먼저 은행나무가 선 담장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낮은 돌담 아래에는 비비추 꽃대가 올라와 있고 그 곁으로 참나리꽃이 수수하게 섞여 있다. 이 소박한 여름꽃들이 어우러진 뜰에서 나그네는 근심 없이 여유롭다.

서재인 주일재 앞에는 소나무·대나무·매화·국화를 벗으로 삼은 사우단(四友壇)이 기품 있게 자리를 차지한다. 이 또한 성리학의 이치로 읽을 수 있는 풍경이지만, 나그네에게는 격조 높은 쉼의 흔적으로 보인다. 원림의 모든 것들은 새로 들여놓은 것이 아니다.

나그네의 시선은 마침내 못 안의 돌에 닿는다. 서석지에는 60여 개의 '상서로운 돌' 서석이 있고, 그중 19종에는 저마다 이름이 붙어 있다. 신선이 노니는 '선유석', 바둑판을 닮은 '기평석', 물결을 바라보는 '관란석', 낚싯줄을 드리우기 좋은 '수륜석'이 있다. 바둑 구경에 빠져 도낏자루가 썩는 줄도 몰랐다는 고사를 품은 '난가암'도 있다.

그런데 이 돌들은 정영방이 멋진 정원을 만들겠다며 어디선가 얻은 조경석이 아니다. 못을 만들려고 땅을 파자 그 자리에 묻혀 있던 돌들이다. 정영방은 그것들을 캐내 버리지 않았다. 못속에 그대로 두고 생김새를 살펴 하나씩 이름을 붙였다. 이런 놀라운 조화가 있나 싶다.

서석지는 돌들을 밀어내지 않고, 저마다 제자리에 있게 한 조화로운 못이다.
서석지는 돌들을 밀어내지 않고, 저마다 제자리에 있게 한 조화로운 못이다.

◆은행나무 아래에 서서

서석지를 떠나기 전, 은행나무 아래에 선다. 사백 년을 넘긴 나무 아래로 짙은 그늘이 너르게 퍼져 있다. 그 아래에 서서 험한 시대를 살아낸 정영방을 추모한다. 늘 전란과 정쟁 옆에 있었던 삶이다. 그런 그가 택한 것은 세상과 완전히 등을 지는 삶이 아니다. 세상을 피해 숨지 않고 또 다른 삶을 살기 위해 서석지를 일군다. 못을 들이고, 터가 내놓은 돌을 받아들이고, 행단의 뜻을 담은 은행나무를 심는다. 서석지와 경정은 난세에서도 자기를 잃지 않으려 마련한 집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은거라는 말도 달리 들린다. 세상에서 물러난다고 반드시 세상을 버리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한 걸음 물러나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서석지를 두고 나오는 길에도 볕은 뜨겁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나그네 쪽이다. 경정 툇마루에서 못을 바라보며 한참을 앉았고, 오래된 은행나무 아래에서는 정영방을 생각했다. 걸음을 멈추고, 경정을 오르내리고, 서석에 눈길을 던지고, 연잎이 흔들리는 그 순간을 기다리는 모든 게 쉼이다.

은행나무 그늘에서 한동안 발걸음을 떼지 못한다. 못에서는 연잎이 가볍게 흔들리고 경정은 그 곁에 담담히 앉아 있다. 서석들은 저마다의 이름을 얻은 채 못의 풍경을 이룬다. 세상은 타오르지만, 이곳에는 쉼이 가득하다. 이제 뜨거운 세상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잘 쉬었으니, 다시 살아낼 만하겠다.

대구대 문화예술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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