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이 귀하던 시절, '안티푸라민'은 만병통치약(萬病通治藥)이었다. 유한양행이 1933년 개발한 약이다. 이 약은 삐거나 멍든 곳에 바르는 진통소염제다. 안티푸라민이란 이름은 약의 특성을 그대로 설명한다. '반대'란 뜻의 안티(anti)에 '불태우다, 염증을 일으키다'는 뜻의 인플레임(inflame)을 합쳐 발음하기 좋게 바꾼 것이다. 옛 어른들은 손이 터도, 벌레에 물려도 이 약을 사용했다. 심지어 자식들이 배가 아프다고 하면 배에, 감기가 걸렸다면 코 밑에 발라줬다는 이야기도 있다. 집집마다 안티푸라민 특유의 화한 냄새가 진동했던 시절이었다.
소화제 '활명수'는 국내 최초 양약(洋藥)이다. 동화약방(동화약품 전신) 창업자 민강 선생의 부친인 궁중 선전관(宣傳官) 민병호가 개발했다. 궁중에서 쓰던 생약 처방에 서양 의학을 접목해 만든 약이다. 활명수와 안티푸라민은 약을 만들어 나라에 보답하겠다는 '제약보국'(製藥報國)의 일념에서 나온 결과라고 한다. 다분히 '국뽕' 마케팅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러나 두 기업의 역사와 사회 공헌, 창업주의 면면을 살펴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활명수에는 독립운동가 민강의 삶이 녹아 있다. 민강은 활명수 판매금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臨時政府)에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했다. 3·1운동 이후에는 동화약방 사옥을 독립운동 연락 거점으로 활용했다. 국내와 임시정부를 잇는 비밀 행정기관인 서울연통부 활동에도 관여했다. '생명을 살리는 물'(활명수)이 '나라를 구하는 물'이 된 셈이다.
유한양행의 창업자 유일한 박사의 삶은 더욱 극적이다. 미국에서 사업가로 성공했지만 조국의 열악한 의료 현실을 보고 귀국해 회사를 세웠다. 약을 만들어 국민의 건강을 지키고 민족자본을 키우겠다는 뜻이었다. 그러면서 독립운동에도 헌신(獻身)했다. 광복을 앞두고는 미국 전략정보처(OSS)의 '냅코작전'(NAPKO Project·공작원들을 한반도에 침투시켜 미일전쟁의 승리를 도모하고자 했던 계획)에 특수 요원으로 선발돼 훈련까지 받았다.
두 기업 창업자들의 애국애족(愛國愛族)은 명확했다.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란 질문에 그들은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로 답했다. 광복 81년, 친일 행적과 친일 재산 환수는 여전히 논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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