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가 제시한 국정운영의 표면적 목표는 결코 가볍지 않다. 정부는 '세계 3대 AI 강국', '산업 르네상스', '균형성장', '국익 중심 실용외교', '신뢰받는 강군'을 국정목표로 내세우고 있다. 외교·안보 분야에서도 한미동맹에 기반한 억제력,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국방개혁, K-방산 육성, 북핵 문제 해결 등을 공식 과제로 설정했다. 문제는 개별 정책의 명칭이 아니라 이 정책들이 하나의 국가전략으로 정합성을 갖고 있는가이다. 경제·외교·안보를 서로 분리해서 볼 수 없기 때문에 종합적 관점에서 분석해야 한다.
◆국내정책의 핵심 문제는 '분배'가 아니라 성장동력의 지속 가능성이다.
한국은 반도체라는 세계적 경쟁력을 가지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그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 반도체 호황이 한국 경제를 지탱하는 상황과 동시에 미국 내 투자 확대, 국제적 과잉투자 가능성, 미래 산업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 실제로 2026년 정부는 반도체 호황에서 발생하는 초과 세수를 활용해 청년·AI 등에 투자하는 '미래대응기금'을 추진하고 있다. 취지는 이해할 수 있으나 국가전략적으로 보면 중요한 것은 호황의 과실을 어디에 쓸 것인가보다 다음 호황을 만들어낼 산업을 어떻게 육성할 것인가이다.
정부의 '균형성장', '포용금융', '골목상권', '공정경제' 정책도 필요하다. 그러나 국가가 시장의 결과를 지나치게 교정하려 하면 기업의 투자와 혁신을 위축시킬 위험이 있다. "시장 자유의 축소가 생산성·효율·혁신 저하로 이어지고 궁극적으로 소비자의 손실이 된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따라서 정부의 경제정책은 재분배의 확대보다 성장 참여자의 확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정부 스스로도 AI, 첨단산업, 자본시장 혁신을 국정과제로 제시하고 있으므로 기업의 자율성·사유재산권·규제 예측 가능성을 보장하면서 청년과 중소기업이 성장 과정에 진입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경제성장 과실이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공평하게 돌아가는 '포용적 성장'과도 부합한다.
◆'실용외교'는 등거리 외교가 아니라 국익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다.
이재명 정부는 주변 4국과의 관계를 모두 개선하는 '국익 중심 실용외교'를 내세우고 있으며, 정부는 지난 1년간 미국·중국·일본과 정상외교를 복원하고 경제외교를 확대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방향 자체는 타당하다. 한국처럼 무역의존도가 높고 미·중 양국과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국가는 이념외교보다 실용외교가 필요하다.
그러나 실용외교가 모든 국가와 같은 거리를 유지한다는 의미가 되어서는 안 된다. 한국의 안보 구조는 한미동맹 위에 세워져 있고, 북핵 억제 역시 미국의 확장억제와 연합방위 체제에 크게 의존한다. 중국은 중요한 경제 파트너지만 동시에 미·중 전략경쟁의 상대이며 북한에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국가이다. 따라서 미국과 중국을 동일한 전략적 지위에 놓는 것은 현실과 맞지 않는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는 동맹도 비용과 기여의 관점에서 판단하는 경향이 강하다. 최근 한미관계에서는 방위비, 한국의 대미투자, 무역규제, 인도·태평양에서의 역할 등이 동시에 쟁점화되고 있다. 이런 시대에는 "동맹은 당연히 유지된다"는 기존의 사고보다 한국이 미국에 왜 필수적인 동맹인가를 군사·산업·기술 측면에서 증명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대북정책은 '평화 의지'보다 '억제의 신뢰성'이 먼저다.
정부는 공식적으로 북핵 문제에 대해 동결→감축→폐기의 단계적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병행하고, 남북대화와 미북협상의 선순환을 추구하고 있다. 대화의 문을 열어두는 것은 필요하다. 전쟁을 피하고 긴장을 관리하는 것은 모든 정부의 책무다.
하지만 문제는 평화를 원한다는 의사와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은 별개라는 점이다. 북한은 최근에도 한국의 대화 제의에 호응하지 않았으며, 한미훈련 축소에도 미국의 '적대정책'이 변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더구나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과의 직접 회담에 관심을 나타내고 있어, 미·북 직접협상이 재개될 경우 한국이 협상의 중심에서 밀려날 위험도 존재한다.
따라서 한국의 전략은 선 억제력 확보, 후 대화가 되어야 한다. 강력한 한미연합 방위태세와 한국군의 독자적 대응능력이 보장된 상태에서 대화를 추진해야 협상력도 생긴다. 대화 자체가 전략이 아니라 강한 억제를 바탕으로 한 대화가 전략이어야 한다.
◆전작권과 국방개혁은 정치적 상징이 아니라 전쟁수행능력으로 판단해야 한다.
정부는 '한미동맹 기반 전방위적 억제능력을 바탕으로 한 전작권 전환'을 공식 국정과제로 제시한다. 문제는 전환 자체의 찬반보다 조건이 충족되었느냐이다. 북한 핵·미사일 능력이 고도화되고 러·북 군사협력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지휘구조 변경은 정치적 시간표보다 전쟁수행능력에 따라 결정되어야 한다.
동일한 기준은 육·해·공군 사관학교 통합에도 적용된다. 합동성 강화를 이유로 서로 다른 전장·전문성·전통을 가진 장교양성체계를 물리적으로 통합하는 것이 실제 전투력 향상으로 연결되는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이는 중요한 국가전략적 질문이다. 합동성은 동일성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전문성을 결합하여 전장에서 통합된 효과를 내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국방개혁 역시 정치적 상징이나 조직개편 실적이 아니라 "전쟁이 나면 더 잘 싸우게 되었는가"라는 단 하나의 기준으로 평가해야 한다.
이재명 정부가 제시한 '혁신경제', '실용외교', '강군', '한반도 평화'라는 목표 자체를 부정할 이유는 없다. 문제는 목표 사이의 우선순위와 전략적 일관성이다. 성장보다 분배가 앞서 기업 활력이 위축되고, 실용외교가 전략적 모호성으로 변하며, 평화정책이 억제력을 약화시키고, 국방개혁이 정치적 상징 사업이 된다면 각각의 선의가 합쳐져 오히려 국가 역량을 감소시킬 수 있다.
대한민국의 국가전략은 네 가지 순서를 분명히 해야 한다. 경제에서는 시장과 산업경쟁력을 먼저 키우고, 외교에서는 한미동맹이라는 전략적 중심축을 확고히 하며, 대북정책에서는 억제력을 바탕으로 대화를 추진하고, 국방개혁에서는 정치적 명분보다 전투력과 군사전문성을 우선해야 한다. 세계가 다시 힘과 국익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시대에 가장 위험한 것은 상대의 의도를 선의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능력을 실제보다 크게 평가하는 것이다.
국가전략의 본질은 좋은 의도를 선언하는 데 있지 않다.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면서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낼 힘을 축적하는 것, 그것이 지금 이재명 정부가 국내 정책과 대외 정책 전반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점검해야 할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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