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김교영] 배달 시인이 '루쉰문학상'

구글 검색 선호 출처로 추가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김교영 논설위원
김교영 논설위원

"식당에서 음식을 받아 들고/ 나는 바람을 가르는 화살이 된다./ 고층 빌딩의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시간이 없어 나는 계단을 솟구쳐 오르는 열정이 된다./ 고객에게 욕을 들었을 때는/ 머리를 조아리는 사과가 된다./ 이 도시를 가로지르며/ 나는 오직 시간하고만 경쟁한다./ 나는 줄곧 서두르는 사람./ 하지만 나 역시 누군가의 아비이고, 누군가의 남편이며, 누군가의 자식이다./ 내가 바쁘게 달리는 까닭은/ 나를 기다리는/ 누군가의 삶을 위해서다."

최근 중국 최고 권위의 '루쉰문학상'(魯迅文學賞)을 받은 왕지빙(王計兵)의 시, '서두르는 사람'의 전문이다. 관념과 추상이 없다. 화려한 꾸밈도 없다. 우리처럼 '누군가의 아비, 누군가의 남편'이란 상투적인 표현을 썼다. 이렇게 평범한 작품을 쓴 시인이 루쉰문학상을 거머쥐었다. 중국의 문학계도 놀랐다고 한다. 왕지빙의 별명은 '음식 배달하는 시인'(외매시인·外賣詩人)이다. 농촌 출신에 중졸 학력인 그는 건설 노동, 폐지 수집 등을 거쳐 지금은 식당 운영과 배달 일을 겸하고 있다.

왕지빙은 구겨진 영수증에 뭔가를 끄적인다. 손이 바쁘면 담뱃갑에, 이마저 여의치 않으면 휴대전화에 음성으로 문장을 남긴다. 이렇게 쌓인 시들이 루쉰문학상이 됐다. 왕지빙은 "예순 살까지 배달을 계속하겠다"고 했다. 이젠 전업(專業) 작가로 살 만도 한데, 오토바이에서 내리지 않겠단다. 시는 책상머리가 아니라, 거리에서 태어난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일까. 하기야 시인 김수영은 시작(詩作)을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라고 했지 않았나. 루쉰문학상을 받은 왕지빙의 시집 제목은 '저공비행'(低空飛行)이다. 사람들은 성공을 높이 나는 독수리에 비유한다. 그러나 그는 낮게 나는 제비를 닮았다. 하늘은 독수리만의 것이 아니라 제비의 것이기도 하다.

문학은 낮은 곳에서, 길바닥에서, 그늘진 곳에서 꽃피울 때가 많다. 공장 노동자 박노해의 손에서, 현대중공업 노동자 백무산의 작업복에서, 험한 노동 현장을 누비고 다닌 송경동의 몸에서 시가 태어났다. 민중가요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안치환이 박영근의 시를 개작해 작사·작곡)의 원작(原作) 시인은 노동자의 삶, 슬픔, 사랑을 서정적으로 그렸다. 피와 땀으로 쓴 시가 관념으로 빚은 것보다 팔팔하다.

mWiz
1800
AI 뉴스브리핑
정치 경제 사회 국제
한동훈 무소속 의원은 박선원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이 공익신고자의 신원을 공개하고 비방한 것에 대해 공익신고자 보호법 위반 가능성을 제기하며 ...
대구시는 추석 명절을 앞두고 1천억원 규모의 대구로페이 발급과 5천억원 규모의 중소기업 금융지원을 포함한 민생경제 활성화 방안을 추진하며, ...
홍준표 전 대구시장이 변호사 업무를 재개한다고 발표하며, 별도의 사무실 없이 주거지를 사무소로 등록하고 상담 업무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브리핑 데이터를 준비중입니다..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