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성로에 들어선 집, 무영당
여름이 물러가고 가을이다. 뜨거운 여름에도 그늘에만 머물 수는 없었다. 대구의 피란민촌에서 고단한 삶이 녹아든 집을 살폈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가꾼 영양의 서석지를 거닐었다. 문경의 가은역을 다녀왔다.
땅속의 석탄이 일으켜 세운 작은 역, 가은역을 둘러볼 때는 가을이 오는구나 싶었다. 그래도 한낮의 볕은 뜨거웠다. 그 볕 아래서 서늘한 가을바람이 그리웠다. 한결 선선한 바람을 느끼며 걷고 싶었다. 집에 깃든 이야기를 여유롭게 듣고 싶었다. 추석이 지나니 아침저녁에 서늘한 기운이 묻어난다. 이번에는 대구 서성로의 무영당으로 발길을 옮긴다.
무영당은 처음 찾아가는 집이 아니다. 몇 년 전부터 여러 번 들렀던 곳이다. 익숙한 집이지만 문턱을 넘으면 식민지 모던보이가 된 듯하다. 이 집은 하마터면 사라질 뻔했다. 2020년 12월, 대구시가 철거 직전의 무영당을 사들여 지켰다. 하여 오늘도 그 안에 사람들이 모이고 새로운 이야기가 쌓인다. 그 이야기를 따라 집 안을 천천히 걸어보기로 한다.
이 집이 선 서성로는 일제강점기에 본정통으로 불렸다. 조선인과 일본인의 가게가 이웃해 있었다. 달구벌의 큰 시장인 서문시장이 멀지 않아 사람들의 발길이 잦았다. 사람들이 먹고사는 데 요긴한 물건들이 이 거리에서 팔렸다. 일본인 가게들이 상권을 넓혀가던 무렵, 1923년 이근무가 무영당의 문을 열었다. 책과 문구로 시작한 가게는 차츰 다양한 물건을 들여놓으며 백화점으로 성장했다.
◆무영당에 드나든 사람들
무영당 1층, 유리로 된 전면 너머로 안이 들여다보인다. 그 위로 가로로 긴 간판에는 영문으로 무영당의 이름이 적혀 있다. 위층 외벽은 밝은 회백색의 작은 타일로 촘촘히 덮여 있다. 세로로 긴 창들이 위아래로 줄을 맞춘다. 3층 창틀 위에 직사각형 장식이 매달려 있다. 가운데의 작은 네모를 둘러싸고 잎과 덩굴을 닮은 무늬가 양옆으로 굽이친다. 시선을 더 올리면 꽃과 잎 모양의 장식이 반복되며 가장자리를 따라 긴 띠를 이룬다.
무영당이 처음부터 이런 콘크리트 건물은 아니었다. 장사 수완이 뛰어난 이근무는 가게를 키워 나갔다. 1937년 11월에는 지금의 건물을 새로 지어 백화점으로 문을 열었다. 1층부터 3층까지는 매장으로 쓰고, 그 위에는 옥상 공간과 소방 타워를 두었다. 1936년 8월 8일 자 동아일보는 "대구엔 유일이고 최초의 대백화점 출현"이라며 소식을 전했다.
무영당에는 물건을 사러 오는 손님만 있었던 게 아니었다. 대구의 청년 예술가들도 이 집을 즐겨 찾았다. 그만큼 청년 예술가들이 이근무를 신뢰했다. 1930년 윤복진은 이곳에서 동요집 『중중때때중』의 출판 기념회를 열었다. 창업주 이근무, 작곡가 박태준과 함께 찍은 기념사진 속의 윤복진은 영락없는 청년의 얼굴이다.
그 얼굴을 바라보며 화가 이인성, 시인 이상화와 백기만, 이육사를 떠올린다. 어디 그들뿐이었을까.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청년들도 무영당을 오가며 호기심을 달래고 꿈을 키우지 않았을까. 그들에게 무영당은 어떤 집이었을까. 책을 고르고 서로 안부를 묻던 그들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무영당 안으로 발을 들인다. 너른 홀에서는 석재 서병오 서거 90주년 기념 특별전 '수묵화개(水墨花開) 앞산에 뜬 달'을 준비하는 손길이 한창이다. 거리의 풍경은 서서히 가을로 물들어가고, 홀 안의 사람들은 작품을 놓을 자리를 살핀다. 무영당은 죽은 건물이 아니다. 오늘은 화랑으로 꾸며져 사람들을 맞을 채비를 하고 있다. 한때 사라질 뻔했던 무영당에 작품을 만나러 오는 발걸음이 이어진다.
홀을 둘러본 뒤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오른다. 굵은 기둥과 천장을 가로지르는 보 아래에 작품들이 놓여 있다. 벽과 천장은 칠이 군데군데 벗겨져 있다. 기둥에도 칠이 벗겨진 자국이 있고, 바닥에는 가느다란 금이 이어진다. 이 풍경을 바라보며 나그네는 뜻밖의 위로를 얻는다. 무영당이 살아낸 시간을 가까이 마주하기 때문이다. 나란히 놓인 창으로 빛이 들어와 바닥 한쪽을 밝힌다.
벽마다 그림이 걸려 있다. 세로로 긴 화폭 속에서 짙은 먹빛으로 그려진 소나무는 굵은 줄기를 굽히며 위로 뻗는다. 창 사이에 걸린 푸른 색채의 그림은 산자락과 굽이치는 길을 떠올리게 한다. 안쪽 벽에는 열반에 든 부처의 얼굴과 손이 나란히 걸려 있다. 바닥에 놓인 납작한 검은 모양의 선반에는 얕게 물이 담겨 있다. 그 물속에서 목숨 '수'(壽) 글자가 잠시 쉼을 얻는 듯하다. 무영당은 수묵 작품들을 받아주고, 그림은 이 집의 품위를 더한다.
3층으로 오르는 계단 난간의 문양을 천천히 들여다본다. 길쭉한 틀 안에서 세로선과 가로선들이 서로 이어진다. 그 사이에 일정한 간격으로 놓인 작은 원들이 마치 움직이는 사람의 머리처럼 보인다. 아래쪽에는 네모난 빈 공간이 나란히 이어진다. 난간의 기울기를 따라 문양도 비스듬히 흐른다. 현대식 빌딩의 계단과는 다른 멋이 있다. 층을 오르는 데만 마음을 둘 일이 아니다.
계단 중간에서 걸음을 멈추고 2층을 내려다본다. 기둥 사이에 작품들이 놓여 있고, 벽에도 그림이 걸려 있다. 기둥과 창, 벽과 작품이 어우러진 홀 전체가 하나의 작품처럼 보인다. 그 안의 그림들은 그림 속에 담긴 또 다른 그림 같다. 백화점의 쓰임은 끝났지만, 무영당은 작품을 펼치는 공간으로 쓰임을 이어간다.
3층에는 접이식 의자들이 줄을 맞춰 관객을 기다리고 있다. 사람들이 의자에 앉아 이야기를 듣는 모습을 떠올리며 벽에 걸린 작품들을 둘러본다. 의자 앞에는 세 점의 그림이 나란히 걸려 있다. 왼쪽 그림에는 푸른 밤하늘에 연노란 달이 떠 있다. 작은 점들이 별처럼 흩어지고, 아래로는 길처럼 보이는 선들이 겹친다.
가운데 그림에는 붉은 바탕을 따라 초록 줄기와 노란 꽃이 뻗어 있다. 오른쪽 그림에는 어두운 바탕 위로 초록 잎과 분홍빛 꽃이 펼쳐진다. 가느다란 선들이 별자리처럼 그 사이를 잇는다. 다시 왼쪽 그림으로 눈길을 돌리니 나그네의 마음에도 두둥실 달 하나가 떠오르는 기분이다.
옥상으로 오르는 계단에서 걸음을 멈춘다. 미디어아트 작품이 계단 벽을 스크린 삼아 글씨를 펼친다. 갈라진 벽 위로 연둣빛 글씨가 춤을 춘다. 크고 작은 글씨와 궁궐 이미지를 가만히 바라본다. 무영당이 말을 건네는 듯하다. 이 집을 드나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제 목소리로 들려주는 것 같다.
◆무영당, 이야기가 쓰이는 곳
3층 위 옥상으로 나온다. 바닥에는 희고 누런 자갈이 깔려 있다. 자갈 사이로 둥근 디딤돌이 놓여 있다. 표면에 새겨진 빗금을 살피며 걷는다. 옥상 담 너머로 서성로 일대가 펼쳐진다. 가로수 아래로 자동차가 오가고, 길을 따라 늘어선 상점의 간판들이 보인다. 그 뒤로 새 아파트들이 높이 솟아 있다. 멀리 산자락까지 눈에 들어온다. 옥상에서 바라보는 서성로가 한 폭의 그림 같다.
옥상 한쪽에는 회색 철제 난간을 두른 계단이 있다. 그 끝에 작은 옥탑방이 자리한다. 동화 속에서 만날 법한 방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 벽에 걸린 큰 액자를 살핀다. 옛 사진과 신문 기사 곁에 무영당의 이야기를 풀어놓은 글이 있다. 이 작은 방이 마음에 드는 이유다. 처음에는 소방 타워로 지었지만, 지금은 무영당의 이야기를 간직한 방이다.
이 집을 세운 이근무는 무영당의 이런 미래를 짐작했을까. 앞으로 이곳을 드나들 사람들이 궁금해진다. 누군가는 말을 하고, 누군가는 작품을 펼치고, 누군가는 그림 앞에 머물 것이다. 그들의 손길과 발걸음이 이 집을 가득히 채울 것이다. 그들이 이 집을 짓고 드나든 사람들을 잠시 떠올려주기를 바란다.
도시에는 이런 오래된 집도 있어야겠다. 오래된 것들이 쉬이 무너지는 도시에서 무영당이 남아 있어 반갑다. 오래된 집에는 먼저 이곳을 짓고 찾았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남아 있다. 그들의 이야기가 잊히지 않고 주변에 전해지면 좋겠다. 다음에는 무영당이 어떤 이야기로 나그네를 맞이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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