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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창] 불신의 사회에서 신뢰의 사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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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원 대구가톨릭대학교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이동원 대구가톨릭대학교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소아청소년과 의사로 일하면서 특히 존경하는 선생님들이 있다. 소아·신생아중환자실과 소아응급실에서 일하는 의료진이다. 나 역시 소아심장을 전공하며 위급한 환자를 진료하지만, 이분들이 감당하는 책임은 남다르다. 1년 365일 생사의 갈림길에 선 아이들을 치료하고, 때로는 최선을 다했음에도 환자를 떠나보내는 상실감까지 견뎌야 한다.

최근 그 소아응급실이 사회적 논쟁의 중심에 섰다. 아주대학교병원 소아응급실 압수수색 사건이다. 지난 7월 외래진료를 받던 생후 4개월 영아가 갑작스러운 청색증과 호흡곤란으로 소아응급실에 옮겨졌다. 의료진이 약 한 시간 동안 심폐소생술을 시행했지만 끝내 사망했다. 유가족은 의료과실을 주장하며 고소했고, 경찰은 9월 말 법원이 발부한 영장으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이후 소아응급센터 전문의 9명 중 7명이 사직 의사를 밝혔다.

이 사건에는 두 가지 중요한 원칙이 있다. 범죄 수사에 성역은 없어야 한다는 것과, 최선을 다한 치료가 나쁜 결과만으로 폄훼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아이를 잃은 부모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사망 원인과 의료과실 여부를 밝히는 것은 유가족의 정당한 권리다. 의료진에게 잘못이 있었다면 책임도 져야 한다.

다만 증거 확보 과정에서 소아응급실의 특수성을 충분히 고려했는지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 경찰은 환자가 없는 진료실에서 병원 측과 협의해 압수수색했다고 설명하지만, 의료진은 진료에 차질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소아응급실에는 사실상 언제나 비어 있는 진료실이란 없다. 몇 초 뒤라도 심정지 환자가 들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컴퓨터 역시 환자 상태를 확인하고 검사와 약물을 처방하는 필수 진료 도구다.

수사 대상이었던 전자의무기록(EMR)도 마찬가지다. 응급처치를 먼저 시행한 뒤 그 내용을 정확히 기록하는 것과 책임을 피하려고 기록을 조작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조작 정황이 있다면 엄정하게 수사해야 한다. 그러나 자료 제출을 요청하거나 응급실 밖에서 증거를 확보할 방법은 없었을까. 진료 현장에서 직접 압수수색해야 했던 이유에 대한 설명이 아쉽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후유증이다. 소아응급실에는 심정지, 패혈증, 심근염 등 생명을 위협하는 질환을 가진 아이들이 찾아온다. 적절한 치료에도 환자를 살리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의료사고와 의료과실, 불가항력적인 결과를 구분해야 하는 이유다. 결과를 모두 아는 지금의 시선으로 당시 제한된 정보와 시간 속에서 내린 판단을 평가하는 것도 신중해야 한다.

의사가 '아이에게 최선의 치료인가'보다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을까'를 먼저 걱정한다면 어떻게 될까. 불필요한 검사가 늘어나는 방어 진료나 중증환자 진료 기피로 이어질 수 있다. 젊은 의사들도 소아응급의료와 신생아중환자 진료를 선택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결국 피해는 치료받을 병원을 찾아 헤매는 아이들과 부모에게 돌아간다.

그동안 의료계의 여러 모습에 국민이 실망하고 신뢰를 잃었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의료계 역시 스스로를 돌아보고 신뢰 회복에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환자를 지키는 의사들도 있다. 내가 존경하는 소아응급실과 중환자실의 선생님들이 바로 그런 분들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경찰과 의료계가 응급진료 현장을 보호할 수사 지침을 논의하고 있다는 점은 다행이다. 환자의 권리를 지키면서 의료진도 소신껏 진료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의료진에게 책임을 묻는 과정이 오히려 중증환자를 치료할 의사들을 현장에서 떠나게 해서는 안 된다. 서로를 불신하는 사회에서 각자의 역할을 존중하는 신뢰의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그래야 우리 아이들이 아플 때 언제든 안심하고 치료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동원 대구가톨릭대학교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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