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투자 회의론에 짓눌린 국내 반도체주가 미국 중간선거를 기점으로 반등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선거 결과에 따라 미국 의회의 권력 구도가 재편되면 그동안 시장을 압박해 온 정책 불확실성도 완화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과거 중간선거 이후 미국과 국내 증시가 대체로 상승 흐름을 보였다는 점도 투자심리 회복에 대한 기대를 키우고 있다.
다만 이번 증시 조정의 배경에는 정치적 불확실성뿐 아니라 AI 산업의 투자 대비 수익성에 대한 의구심도 자리 잡고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의 대규모 설비투자가 실제 매출과 이익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선거 종료만으로 반도체주의 상승 추세가 되살아나기는 어렵다는 신중론도 나온다.
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3일(현지시간) 연방 하원의원 전원과 상원의원 3분의 1가량을 선출하는 중간선거가 진행되고 있다. 이번 선거의 핵심은 공화당이 장악한 의회 권력 구도에 변화가 생길지 여부다. 민주당이 상·하원 모두에서 다수당을 확보할지, 공화당이 적어도 한 곳에서 주도권을 유지할지에 따라 향후 미국의 재정·무역·기술정책 추진 환경이 달라질 수 있다.
특히 국내 반도체 업종이 주목하는 변수는 AI와 데이터센터를 둘러싼 규제 강도다. 민주당이 의회 주도권을 확보하면 빅테크 기업에 대한 감독과 데이터센터 건설 관련 규제 논의가 탄력을 받을 수 있다. 데이터센터 확충에 따른 전력 소비와 지역 주민의 비용 부담, 환경 문제 등이 미국 내 정치적 쟁점으로 떠오른 만큼 관련 산업에 대한 규제 압력이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반면 민주당이 하원을 차지하고 공화당이 상원 다수당 지위를 유지하는 분점 의회가 형성되면 시장의 경계심이 다소 누그러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양당 간 입법 대립으로 급격한 정책 변화가 어려워지면서 기업들이 사업 계획을 세울 때 고려해야 할 정책 변수도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기존 대중국 반도체 수출 통제 기조가 유지되는 가운데 새로운 규제가 갑작스럽게 도입될 가능성이 낮아지면 국내 반도체 기업에도 긍정적이라는 분석이다.
이지선 토스증권 연구원은 민주당이 상·하원 모두에서 다수당 지위를 확보할 경우 "법인세 감세 연장 등에 제동이 걸리고, 빅테크와 AI 산업에 대한 규제·감독이 강화되면서 주가 변동성이 확대될 수 있다"라고 내다봤다.
이 연구원은 반면 양당이 상·하원을 나눠 갖는 경우 "입법 정체로 대규모 정책 변화에 대한 우려가 줄어들고, 정치적 불확실성이 해소될 수 있다"라며 "만약 공화당이 양원 다수당 지위를 유지하면 법인세 감세와 규제 완화 등 친시장 정책이 힘을 얻을 수 있지만, 관세와 무역정책을 둘러싼 강경 발언이 늘어날 경우 수출 비중이 높은 국내 대형주에는 부담이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 같은 의회 구도는 미국 기술주를 통해 국내 반도체 대형주에 전달될 전망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AI 서버에 들어가는 고성능 메모리 반도체 수요 확대의 핵심 수혜 기업으로 꼽힌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의 데이터센터 투자가 지속되면 고대역폭메모리(HBM)와 서버용 D램 수요도 뒷받침될 수 있다. 반대로 데이터센터 건설과 AI 인프라 투자가 규제나 자금 조달 문제로 지연되면 반도체 수요에 대한 기대도 약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선거 이후 외국인 수급이 개선될지도 관심사다. 미국 기술주가 반등하고 글로벌 위험자산 선호가 살아나면 국내 대형 반도체주로 투자 자금이 다시 유입될 가능성이 있다. 실제 최근 국내 증시에서는 외국인의 반도체 대형주 매도세가 지수 하락 압력을 키웠다. 특히 미국 기술주가 AI 투자 수익성에 대한 우려로 약세를 보이면서 국내 반도체주에 대한 투자심리도 함께 위축된 모습이다.
과거 통계만 놓고 보면 중간선거 이후 증시 흐름은 우호적이었다.
한국투자증권에 따르면 1958년 이후 미국 중간선거가 치러진 해의 11월 S&P500 상승 확률은 82%였다. 총 17차례 가운데 14차례 상승했으며 평균 상승률은 3.8%였다. 1990년 이후 아홉 차례로 범위를 좁혀도 1994년 채권시장 충격이 있었던 해를 제외한 여덟 차례 상승했다.
정정영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시장은 중간선거 결과보다 이벤트 종료 자체를 불확실성 해소로 받아들이고 있다"라며 "중간선거 결과 확인 이후 기술주 중심의 숏커버링(공매도 청산을 위한 주식 재매수) 가능성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국내 증시 역시 과거 중간선거 이후 회복 흐름을 보인 경우가 많았다. 에프앤가이드와 키움증권 등에 따르면 2000년 이후 여섯 차례의 미국 중간선거 이후 코스피는 1개월간 평균 2.5% 상승했다. 6개월과 12개월 수익률은 각각 평균 6.3%, 10.5%였다. 상승 확률은 1개월 67%, 6개월과 12개월은 각각 83%로 집계됐다.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코스피는 중간선거를 앞두고 약세를 보이다가 선거 이후 회복하는 흐름을 보여왔다"라며 "선거라는 불확실성이 해소된 이후 글로벌 위험선호가 회복되는 과정이 반복됐다"라고 설명했다.
다만 과거 통계가 이번에도 그대로 재현될 것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중간선거 이후 증시 상승은 정치적 불확실성 해소뿐 아니라 금리와 경기, 기업 실적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에는 AI 산업의 성장 기대가 높아진 만큼 투자 규모가 실제 수익으로 연결되는지에 대한 검증이 주가 흐름을 좌우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빅테크 기업들이 데이터센터와 AI 반도체 확보를 위해 투자를 늘리고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자금 조달 부담과 현금흐름 악화 우려도 커지고 있다. 반도체 기업 입장에서는 AI 인프라 투자가 이어지는 것만큼이나 고객사들이 투자를 지속할 수 있는 재무적 여력을 갖췄는지가 중요해진 셈이다.
선거 이후 규제 우려가 완화되더라도 빅테크의 투자 계획과 AI 서비스의 수익화 속도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반도체주가 다시 압박받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영곤 토스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향후 AI 반도체 산업의 성장세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AI 산업의 수익화가 뒷받침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한지영 연구원은 "최근 증시 불안의 핵심은 미국발 정치적 불확실성보다 AI 투자 의구심에 따른 현금흐름 악화에 있다"라며 "근본적인 투자심리 회복은 AI 산업 우려가 얼마나 완화될 수 있는지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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