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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숙의 옛그림 예찬] <319>연인과 오붓하게 단풍놀이 나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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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 미술사 연구자

신윤복(19세기 초 활동),
신윤복(19세기 초 활동), '휴기답풍(携妓踏楓)', 종이에 채색, 28.2×35.6㎝, 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

두 사람의 가마꾼이 멘 뚜껑이 없는 가마에 긴 담뱃대를 든 여성이 느긋하게 앉아 있다. 물빛 쓰개치마 아래로 풍성한 가채가 살짝 드러났고, 자줏빛 회장을 댄 흰 저고리에 푸른 치마를 입었다. 여성은 가마를 탔고 남성은 걸어간다.

고갯마루를 막 넘어서는데 바람이 분다. 남성은 흔들리는 갓을 한 손으로 잡으며 가마 위의 여성과 눈을 맞춘다. 긴 갓끈이 휘날리고 도포 고름, 풍성한 도포 자락도 바람에 나부낀다. 겉옷이 펄럭이니 그 안에 허리 아래까지 내려오는 긴 옥색 누비조끼를 입은 것, 산뜻한 남색 각주머니를 찬 것, 연한 자주색과 겨자색 허리끈을 길게 드리운 것 등이 드러났다.

한복은 원래 몸의 굴곡을 드러내지 않는 평면 재단이라 옷태를 내는 것은 끈 치레라고 했다. 갓끈, 옷고름, 허리끈 등의 길이와 폭, 색깔이 화음을 이루며 어우러지고, 도포 고름과 대칭되게 반대쪽으로 외지게 묶은 도포 끈도 한몫을 한다. 신윤복이 그림 속으로 바람을 불어오게 한 것은 풍성한 옷자락과 어울린 끈 치레로 이 남성의 맵시를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차분하고 멋스러운 차림새의 두 남녀가 이렇게 오붓하게 도시를 벗어나 나들이에 나섰다면 한량과 기녀인 이 둘을 연인이라고 불러도 좋으리라. 왜냐하면 이 작품이 들어있는 '혜원전신첩' 30점을 보면 기녀와 한량이 야외로 나들이를 가거나 어울려 놀 때 두 쌍이나, 세 쌍이 함께하는 장면이 많기 때문이다.

제화도 이 남녀에 어울린다. '낙양재자지다소(洛陽才子知多少)', 즉 '낙양의 풍류객이 얼마나 되리오?'라고 호기롭게 묻는 것은 서울에 멋쟁이가 많다 하더라도 이만하기는 흔치 않으리라는 자부의 뜻이고, 신윤복이 이들의 풍류를 부러워하는 마음이다. 이 나들이가 색색으로 곱게 물든 단풍 구경을 위한 가을 소풍임을 알려주는 것은 가마꾼이 머리에 꽂고 있는 단풍잎뿐이다. 이 단풍잎이 이 그림을 다 말해준다.

19세기 조선의 리얼함이면서도 격조가 있는 것은 신윤복의 그림 실력이 그러하기도 하지만 이 나들이의 주제인 단풍놀이를 가마꾼 총각의 댕기머리에 꽂은 붉게 낙엽 진 나뭇잎으로 슬쩍 암시한 디테일이 있어서다.

일엽지추(一葉知秋)라고 했다. 나뭇잎 한 잎으로 가을을 안다는 말이다. 조선 후기 문인 심암(心庵) 조두순은 '일엽오비천하추(一葉梧飛天下秋)', 오동잎 한 잎 날리자 천하가 가을이라고 했고, 어느 당나라 시인은 '산승불해수갑자(山僧不解數甲子) 일엽락지천하추(一葉落知天下秋)', 산승이 날짜는 몰라도 잎 하나 떨어지면 천하가 가을임을 안다고 했다.

그러고 보면 "오동잎 한 잎 두 잎 떨어지는 가을밤에~"라는 노래 가사 또한 절창이다. 올해 대구 팔공산 단풍은 예년보다 일주일 정도 늦게 찾아와 11월 3일이 절정이라고 한다.

대구의 미술사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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