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종민의 나무오디세이] 돈나무의 돈은 돈[money]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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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중구 한국은행 대구경북본부 남쪽 도로와 맞닿은 화단에 키 작은 나무 몇 그루가 둥그런 더미를 이루며 겨울에도 새파란 잎사귀를 떨구지 않은 채 푸르름을 유지하고 있다. 제주도나 남해안, 울릉도 지역에 사는 토종 상록수이지만 추위에 약하여 대구에는 아직 흔하지 않은 나무로 이름은 돈나무다. 사람들은 돈나무라는 이름 때문에 돈[錢, money]과 관련된 나무일 것이라고 언뜻 생각하기 쉽다. 새로 개업한 가게에 이른바 '대박'을 기원하는 축하 화분으로도 가끔 보내진다. 실내에서 많이 기르는 금전수(자미오쿨카스)와는 전혀 다른 식물이다. 한국은행 대구지점 앞의 이 조경수도 돈과 관련 있는 나무로 여겨서 심었다면 큰 착각이다. '돈나무'라는 이름이 빚어낸 해프닝일 수도 있다. 나뭇잎이나 줄기, 꽃, 열매 그 어디에도 돈이나 엽전을 닮은 구석이 없다. 왜 이런 오해를 낳았을까?

제주도 도두봉 정상의 돈나무 군락은 수십 그루 나무가 작은 터널을 이루는데 어두침침한 그늘에서 밖으로 바라보면 입구 쪽의 실루엣이 키세스 초콜릿을 닮아 젊은이들 사이에 인기다.
제주도 도두봉 정상의 돈나무 군락은 수십 그루 나무가 작은 터널을 이루는데 어두침침한 그늘에서 밖으로 바라보면 입구 쪽의 실루엣이 키세스 초콜릿을 닮아 젊은이들 사이에 인기다.
돈나무 꽃은 4~5월에 하얗게 피지만 시간이 지나면 노르스름해진다.
돈나무 꽃은 4~5월에 하얗게 피지만 시간이 지나면 노르스름해진다.

◆이름은 '똥나무'에서 유래

돈나무는 상품명이나 유통명이 아니라 '국가표준식물목록'에 등재된 정식 나무이름이다.

돈나무의 이름은 '똥[糞]나무'를 뜻하는 제주도의 토박이말 '똥낭'에서 유래됐다. 가을쯤에 누런색 열매의 껍질이 벌어지면 끈적끈적하고 냄새나는 점액이 나오는데 곤충을 유혹하기에 좋다. 찬바람이 불면 벌이나 나비가 추위를 피해 사라지고 돈나무 열매의 점액을 찾아오는 건 지저분한 곤충들이다. 악취에다 파리까지 많이 꼬이자 제주 사람들은 '똥낭'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똥나무'라는 이름이 듣기 거북하고 이미지마저 거슬리다보니 이를 순화하여 발음상 큰 차이가 없는 돈나무로 부르게 됐다.

제주도를 여행하던 일본인들이 돈나무의 모습을 보고 '똥'을 발음하지 못해 '돈'으로 발음하여 돈나무가 되었다는 그럴듯한 이야기도 있지만 일본의 해안에도 흔한 나무이기 때문에 이는 낭설에 불과하다.

돈나무는 10월말~12월에 열매가 노랗게 익고 껍질이 벌어지면 붉은 씨앗이 나오는데 끈적끈적한 점액질로 싸여 있다.
돈나무는 10월말~12월에 열매가 노랗게 익고 껍질이 벌어지면 붉은 씨앗이 나오는데 끈적끈적한 점액질로 싸여 있다.

◆귀신도 무서워한다는 전설

일제강점기 식물학자 정태현이 펴낸 『조선삼림식물도설』을 보면 당시 이름은 '돈나무' 제주도에서는 '음나무' 전남에서는 '섬음나무'로 지역마다 제각각 달랐다. 한자로는 海桐(해동)이고 중국에서도 그렇게 부른다. 15세기에 편찬된 『세종실록지리지』나 17세기의 전국 지리지인 유형원의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 등에는 해동피가 제주 토산 품목에 들어있다. 다른 지역의 토산에는 찾기 힘들고 제주에만 난다.

옛 문헌에 해동은 음(엄)나무를 가리키며 해동피는 음나무 껍질로 해석된다. 『동의보감』의 한약재 이름에도 해동피(海桐皮)가 있다. 조선 후기 한글학자 류희가 쓴 어휘집 『물명고』에 해동(海桐)은 엄나무[刺楸]의 속껍질로 나온다. 이를 미루어 짐작해보면 제주에 가시가 많은 음나무가 많았다는 얘긴가? 해동이라는 다른 나무가 존재하는가? 아니면 해동과 섬음나무(돈나무)가 같은 나무인가? 등등의 의문과 혼란이 생긴다. 결론적으로 국내에서는 중국의 해동피를 구하기 어려워서 음나무 속껍질을 대신 사용했기 때문에 초래된 혼란이라는 견해가 유력설이다.

일본에서는 19세기경부터 돈나무를 '토베라[トベラ, 섬음나무]'로 두루 쓰였다. 이런 이유로 일제강점기 조선박물연구회가 1937년 펴낸 『조선식물향명집』의 한글 이름은 '돈나무'가 아니라 '섬음나무'로 나온다.

항간에는 섬음나무 명칭과 관련해 나도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귀신이 무서워하는 나무'다. 뾰족한 가시로 무장한 음나무와 아기자기한 돈나무는 겉보기에 서로 비슷한 구석을 찾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식물 분류학적으로 두릅나뭇과와 돈나뭇과로 관계가 한참 먼데도 '음나무'라는 이름이 겹친다.

육지에서는 지역에 따라 음나무 가지를 집안의 문설주 혹은 문짝에 걸어놓고 벽사(辟邪)를 기원하는 풍습이 있다. 예리한 가시가 달린 가지를 대문에 걸어두면 귀신이 무서워서 범접하지 못한다는 주술적 믿음에서 비롯됐다. 돈나무는 중국의 전설 '삼천갑자 동방삭'에 나오는 저승사자가 아주 무서워하는 나무다. 동방삭이 돈나무가 우거진 숲으로 도망가자 저승사자들이 보고도 잡지 못해 발만 동동 굴렸다고 한다. 음나무가 귀한 섬 지역에서 액운을 막아줄 나무를 찾다 보니 저승사자도 무서워한다는 돈나무가 그 역할을 하기에 '섬음나무'라는 이름을 얻게 되지 않았나 하는 얘기다. 일본에서는 입춘 때 귀신을 쫓기 위해 대문에 돈나무 가지를 달아둔다고 한다.

돈나무의 학명은 '피토스포럼 토비라(Pittosporum tobira)'인데 속명 '피토스포럼'은 그리스어로 수지(樹脂)라는 뜻의 '피터(pitta)'와 종자라는 뜻의 '스포로스(sporos)'의 합성어로, 종자에 윤기가 있으며 점착성이 있다는 뜻이다. 종소명 '토비라(tobira)'는 일본어로 '문[扉]'이나 책의 '속표지'를 뜻한다.

대구 중구 한국은행 대구지점의 하단에 심어진 돈나무.
대구 중구 한국은행 대구지점의 하단에 심어진 돈나무.

◆하얀 꽃향기는 감미로워

남쪽 바닷가 벼랑이나 척박한 토양과 거친 환경에서 자라는 돈나무는 소금기가 담뿍 실린 갯바람을 맞아도 굽힘없이 생명력을 유지한다. 상록관목으로 키는 3~4m 정도까지 자라며 줄기의 지름이 한 뼘 정도면 아주 굵은 축에 든다. 줄기 껍질은 회색을 띤 갈색이며, 뿌리의 껍질에서 거북한 냄새가 난다. 잎은 가지 끝에 둥글게 모여 달리며 길이는 5~10㎝ 정도, 끝은 둥글고 아랫부분은 쐐기모양의 장난감 주걱처럼 앙증맞다. 잎의 가장자리는 밋밋하고 뒤로 약간 말린다. 잎사귀 표면은 윤기가 반지르르하며 뒷면은 연한 녹색을 띤다.

돈나무는 암수가 다르며 꽃은 4~5월에 새로 나온 가지 끝에 여러 개 모여서 피는데 수나무의 암술은 기능이 퇴화했다. 꽃잎은 크기가 지름 2~3㎝ 정도로 흰색에서 약간 노르스름하게 바뀌고 향기가 은은한데 싱그러우면서 약간 감미롭다. 금귤나무 꽃에서 풍기는 상큼한 향기와 비슷하기도 하고 편백나무 숲의 푸근한 냄새도 섞인듯하다.

아득한 벼랑 끝에 돈나무 작고 흰 꽃들

세찬 바람에 자꾸만 생을 뒤집는다.

멀리 바다는 말이 없고

파도는 자꾸만 벼랑 밑을 휘감는다.

(중략)

내 눈의 막막한 벼랑 끝에

바위처럼 퍼져 앉는 검은 눈동자.

멀리 이마는 말이 없고

당신의 파도가 자꾸만 흰자위에 부닥친다.

<시집 『손가락이 뜨겁다』 문학과지성사, 2009>

대구 출신인 채호기 시인의 「돈나무 작고 흰 꽃들」에는 해안 벼랑에 뿌리를 내린 처지와 세찬 바람과 마주한 현실에 대한 애틋함이 짙게 배어 있다.

돈나무의 열매는 둥근 모양이고 껍질이 노랗게 익으면 11월쯤에 세 갈래로 갈라져 끈적끈적한 점액과 함께 빨간색 씨가 겉으로 드러난다. 끈끈한 점액은 땅에 떨어진 씨를 보호하기도 하고 동물의 털에 살며시 묻어서 씨를 먼 곳으로 옮기는 역할을 할지도 모를 일이다.

스페인 건축가 가우다가 설계한 바르셀로나 구엘공원에 돈나무가 계단 경계의 생울타리로 식재돼 있다.
스페인 건축가 가우다가 설계한 바르셀로나 구엘공원에 돈나무가 계단 경계의 생울타리로 식재돼 있다.

◆온난화로 한반도 돈나무의 북상

최근 기후변화로 돈나무의 터전도 북쪽으로 옮아가고 있다. 남해안과 제주도 등에서 볼 수 있던 돈나무는 동해안의 포항에서도 자주 눈에 띄고 대구에서도 경관수로 쓰인다. 가시나무(참나뭇과), 먼나무(감탕나뭇과), 꽝꽝나무(감탕나뭇과) 등 난대성 상록수종이 대구 경북의 화단과 공원의 삭막하고 메마른 겨울을 보다 푸르고 아름답게 꾸미는 실정이니 돈나무도 도시 조경수로써 뿌리를 뻗칠 것으로 보인다.

키가 크지 않고 푸른 잎이 나무 전체를 뒤덮어 전체적 수형이 깔끔하여 해안가 공원을 장식하거나 경계를 나타내는 생울타리, 토피어리로도 활용된다. 포항시 흥해읍의 사방기념공원, 여남지구 해양문화공간, 동해면 일월공원 등 영일만 주변 지역의 공원 조경수로 많이 심어져 겨울에도 싱싱한 초록빛을 더해준다. 기온이 적당하고 햇볕이 잘 드는 사질양토를 좋아하지만 특별히 가리는 토질이 없어 어디서든지 잘 자란다. 공해에도 강하고 맹아력도 왕성하여 가지가 많이 뻗는다.

스페인이 낳은 세계적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1862~1926)가 설계한 바르셀로나의 구엘공원에도 돈나무가 식재돼 있었다. 11월의 햇살에 연둣빛 열매가 누렇게 영글어가고 지중해 바람에 싱싱한 초록빛 잎의 광택이 빛났다.

우리나라에는 돈나무과의 식물이 1과 1속 1종만 자생하지만 세계에는 100여 종이 넘게 분포한다.

◆돈나무, 과연 돈 될까

근래에 반려식물로 인기를 누리는 원예종이 무늬돈나무다. 잎을 관상하는 금전수처럼 널리 키우는 반려식물이다. 일본에서 변이개체를 품종 개량해 상품화했다. 따뜻한 환경에서 자라던 돈나무가 저온에 노출되면 몸에 다중불포화지방산을 높여 영양분 손실을 막는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잎 표면에 무늬가 생기는데 이유는 엽록체 발달 장애가 일어나기 때문이란다.

인위적으로 조성된 경관수가 아닌 자연 그대로의 돈나무 군락이 관광객을 불러오는 그야말로 '돈 되는 나무'가 제주도의 '키세스나무'다. 젊은이들에게 핫플레이스로 널리 알려진 제주공항 인근에 있는 얕은 오름인 도두봉 정상의 돈나무 군락은 수십 그루 나무가 작은 터널을 이루고 있다. 그늘이 짙어 대낮에도 어두침침한 군락 안에서 숲 밖을 바라보면 입구 쪽의 실루엣이 미국 초콜릿 '키세스'의 물방울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별칭이다.

몇 해 전 가을 제주도를 여행할 때 푸른 바다와 변화무쌍한 하늘의 배경 또한 MZ세대의 감성과 잘 어울려 포토존 앞에는 차례를 기다리는 젊은이들이 행렬을 이루고 있었다. 돈나무 군락은 SNS를 통해 알음알음으로 퍼졌고 전국에서 몰려온 2030의 순례 코스로 자리매김 했다.

전 언론인 chunghaman@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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