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소설-타인의 시간(66)

언니는 정확히 자정에 도어폰의 버튼을 눌렀다. 나는 몹시 속이 상해 있었다. 기분 같아선 문을 따주지 말고도 싶었지만 그러면 간단없이 울려퍼지는도어폰의 멜로디에 놀란 아버지가 부스스 잠에서 깨어나실 것만 같아 그럴수도 없었다.퉁명스럽게 문을 따준 나는 화가 나 밖도 내다보지 않았다. 곱씹을수록 머릿속이 빨갛게 타올랐다. 더욱 이해할 수 없는 건 언니 애인이었다. 어머니가깐깐히 자리를 지키고 계셨다면 그때도 과연 이렇듯 길게 언니를 붙잡아 두고 있었을까를 생각하니 믿었던 그의 인격이 흙밥처럼 부서져 푸슬푸슬 가라앉았다. 모두 다 한심해. 나는 속으로 툴툴거리며 언니가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현관문을 밀고 들어서는 언니를 보는 순간 나의 추측이 크게 빗나갔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언니의 얼굴은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고, 언니는제 몸도 추스를 수 없을 만큼 술에 많이 취해 있었다. 그런 몸으로 어떻게집을 찾아올 수 있었을까,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언니,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언니가 들어오면 단단히 따지리라 벼르고 있던 나는 덴겁해져 언니를 부축했다. 오장이 느글거리는 술내가 송곳처럼 팍팍히 콧속을 찔러왔다. 오다가 넘어졌는지 옷자락에는 흙도 묻어 있었다.

언니는 흐느적거리며 화장실로 들어갔다. 양변기 앞에서 무너지듯 무릎을 꺾은 언니는 온몸이 들썩거리도록 왝왝거리고 있었다.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한 나는 언니의 등을 두드려 주며 무슨 일이냐고 다그쳤다. 언니에게 무슨 일이 있었다는 걸 한눈에 읽을 수 있었다.

[죽고 싶어]

언니는 글썽한 눈망울로 숨을 헐떡거리며 괴로워하고 있었다.[말해 봐. 무슨 일 있었어?]

언니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내 말을 부정하는 건지 괴로워서나오는 도리머리인지 얼른 구별이 안 갔다.그제서야 토악질을 마친 언니는화장실 바닥에 퍼더버리고 앉아 가물거리고 있었다. 이럴 때 어떻게 처신해야 좋을지 나는 막막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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