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택은 시력이 이제 겨우 6년밖에 되지 않는 신진 시인이다. 그러나 그런그의 짧은 시력에도 불구하고 90년대 시단의 한 가능성으로 자리잡고 있는독특한 시세계를 보여 주는 두권의 시집을 잇달아 상재한 역량 있는 신진이다. 그의 시는 인간의 육체에 원초적으로 내재하고 있는 생명성을 통해 인간존재의 불안과 고독을 새로이 일깨워 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그런평가만으로 그의 시가 가진 의미며 가치가 소진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80년대와 90년대를 거치면서 우리 문학계의 지형도는 두가지 점에서 지양되어야 할 현실을 보여주고 있었다고 판단된다. 그 하나는 현실주의적 세계관에 기초한 일군의 시들의 범람이다. 왜곡된 역사와 정치적 현실은 당연히 사회학적 상상력이라는 문학적 대응을 불러왔지만 시가 이끌어내야 할 본연의정서보다는 설익은 이념으로 무장된 이들 시들은 상상력이라는 문학 본연의고유성을 밟고 일어난 징후였다고 보지않을 수 없게 하고 있으며 심하게는시와 산문의 경계를 허물어뜨릴 정도로 풀어지는 시들을 양산하기도 했다.또 하나는 이와는 반대편에 있는 정신주의 시라고 명명되는 시들에 나타는현상이다. 현실문제에서 멀찌감치 떨어져서 섣부른 초월적 정신의 세계를 보여 주는 시들 역시 시가 지향해야 할 본연의 태도와는 거리가 있는 것으로여겨진다.당겨서 말하자면 김기택의 시들은 이 둘을 극복한 자리에 놓여진다. 현실을배제하지도 않으며 상상력의 본연의 자세에도 충실한 어쩌면 두 세계가 서로길항하면서 조화를 이루어가는 세계에 김기택 시의 본연의 미학이 존재한다.김기택의 시들이 뿜어내는 향기는 독특하다. 그것은 최근의 우리 시단에서거의 독자적이라고 불러도 좋을 상상력에 의지하여 시를 이끌어간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의 시는 시인의 직관의 빛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직관의 결은사물의 현상들을 선험적으로 인식하여 상상력의 순간적인 무늬를 우리에게띄워준다. 그 상상력의 무늬는 그러나 상상력의 아름다운 직물만을 우리에게펼쳐 놓으려고 하지는 않는다. 그 상상력은 삶과 사물의 진실 쪽으로 열려있는데 밑그림은 현대사회의 비정함이며 그속에서 겪는 인간의 소외와 불안,슬픔 같은 것이다. 그는 동식물이며 인간의 동작이나 생태를 그 나름의 결로포착한다. 그것은 미세하게 분할되어 있다가 구절마다 고루 분배되며 시 전체를 하나의 구조에 이르게까지 하며 확산된다. 그 비유와 서술은 한치의 빈틈이 없다.
앞에서 바람이 불면
살갗은 갈비뼈 사이 앙상한 틈을 더 깊이 후벼 판다.
뒤에서 바람이 불면
푹 꺼진 배는 갑자기 둥글게 부풀어오른다.
가는 뼈의 깃대를 붙잡고 나부끼는
검은 살갗.
아이는 모래위에 뒹구는 그릇을 내려다보고 있다. 그는 막대기팔과 다리로위태롭게 떠받친 머리통처럼 크고 둥근,
굶주릴수록 악착같이 질겨지는 위장처럼
텅 빈,
그릇 하나.
'사진 속의 한 아프리카 아이1'
그는 바람에 푹꺼진 배가 '갑자기 둥글게 부풀어 오르는'것을 본다. 그것은아프리카 아이에게서 일어난 현상이기 이전에 그의 의식의 곁에서 일어난 기미이며 움직임이다. 시인의 상상력의 방법적 전략은 이미지가 표상하는 대상의 감각적 성질을 확대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 과장성으로 인해 대상의 비객관화가 시작된다. 그러나 대상이 변형되고 변질되는 것은 아니다. 대상을표상함으로써 단순히 상태를 가리켜 보이는 것이 아니라 대상의 성질을 강조함으로써 독자들은 시인의 의도성의 축의 방향으로 증폭되면서 최고조의 감정의 격렬함속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 선명하고 뚜렷한 상상력은 독창적인환경으로 그의 시를 두드러지게 한다.
이미지의 변화는 의미 범주까지 넘어서서 이루어지고 있다. 둥글게 부풀어오른 배는 2연의 텅빈 그릇과 함께 어울리면서 아프리카 아이의 허기를 보여주는데도 등한하지 않는다. 그것은 '가는 뼈의 깃대를 붙잡고 나부끼는/ 검은 살갗.'이라는 소름끼치는 비유를 통해 더욱 확장된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도 아이의 허기와 죽음의 상태만을 보지 않는다. '둥글게 부풀어오른다','크고 둥근', '텅빈'이라는 어사는 허기와 함께 걸러지고 비워져서 오히려 넉넉해진 세계를 보여주며 '굶주릴수록 악착같이 질겨지는 위장'이라는구절과 겹쳐지면서 허기와 죽음을 버팅겨내는 인간의 근원적인 생명력까지를표상한다. 여기서 물질적 이미지의 양가성에 대한 무늬가 태어난다. 그것은길항하면서 아슬하게 걸쳐져 있다. 김기택 시에 나타나는 이미지는 표면에나타나는 모습이 전부가 아니며, 오히려 반대되는 양극으로 뻗어가는 어느선상에 위치하고 있는 것일지라도 다음순간 어느 지점으로 위치를 바꿔갈지를 짐작할수 없게 하는 충일한 생성의 의지로 가득차 있음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양가성의 드라마를 살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김기택 시를 특정짓는 가장 큰 흐름은 육체의 현상학, 혹은 물질의현상학이라 부를 수 있는 어떤 것이다. 이러한 상상력의 방법적 전략 속에는항용 우리가 이야기하는 '마음'이라는 것까지도 경계를 허물면서 '육체'의범주에 포섭된다.
아침 점심 저녁으로 꼬박꼬박 먹고 마시는데
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몸무게는 그대로다
그 동안 먹은 밥 마신 물 모두 어디로 갔나
대부분 배설물 분비물로 빠져나갔겠지만
머리카락이 되어 깎이고
손톱 발톱이 되어 잘리고 때가 되어 밀려나가고
기운을 써서 소모시켜버렸겠지만
더러는 말이 되어 입에서 새어나가지 않았을까
생각이 되어 부풀기도 하고 작아지기도 하다가
끝내 기억만 남겨두고 다 잊어버리지 않았을까
슬픔이나 분노 절망 기쁨 같은 마음이 되었다가
표정이나 행동으로 울음으로 노래로 바뀌지 않았을까
(중략)
마음도 털처럼 몸에 뿌리 박고 산다는 것
내장이 소화시킨 것을 먹고 자라야 한다는 것
먹지 않으면 몸뚱어리처럼 굶어죽는다는 것
어려서는 아름답고 크게 자유로웠지만 어른이 되면 더러워지고 작아지고 딱딱해져서
평생을 앓다가 죽는다는 것
그런 마음을 보면 불쌍한 몸보다도 더 불쌍해 보인다.
-'마음아, 네가 쉴 곳은 내 안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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