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소설-도시의 푸른나무

시간만이 홀로 빠른 속도로 달려가고 사물들은 모두 이 속도 속에 몸을 맡긴채 정지해 있다. 시간의 폭풍 그 엄청난 가속도에 질려 꼼짝도 하지 않고 있다.-'충돌 직전의 명상'

2)그럼에도 그 일이 주는 성취감

이 두꺼운 습관 밑에 갇혀 있으면 김과장은 안전하다

습관이란 얼마나 큰 폭력인가

그러나 너무나 세차게 오래 길들여져 온 탓에

이 폭력은 김과장의 몸에 편안하고 종종 달기까지 하다

아아 습관이 아닌 모든 것이 낯설다

-'김과장'

3)먹자골목을 지나는 퇴근길

돼지갈비 냄새가 거리에 가득하다

냄새를 맡자마자 어서 핥으려고

입과 배에서 침과 위산이 부리나케 나온다

죽은 살이 타는 냄새임이 분명할 텐데

왜 이렇게 달콤할까

-'먹자골목을 지나며'

4)몸무게가 되기 위하여 물이 살 속으로 들어온다

살과 뼈와 핏줄 사이 가볍고 푹신한 빈틈들을

힘센 무게들이 빽빽하게 채워버린다

(중략)

울음은 이제 형식적으로 입만 크게 벌리고 있다

(중략)

무거움의 밖에서는 또 다른 한떼의 공기들이 파리들처럼 날렵하게 날아다니며 혀를 간지르고 있다

마시려 하면 앵앵거리며 순식간에 흩어지고

힘들여 마신 한 호흡의 공기마저

목구멍에서 찰랑거리던 물이 기어코 밀어낸다

-'소 2'

5)내 귓구멍을 단단하게 틀어막고 있는 이 고요가

사실은 거대한 소음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흔들리고 부딪치고 긁히고 떨어지고 부서지는 소리아이의 울음 하나 새어 들어올 틈 없이 빽빽한 소리

-'고요한 너무나도 고 요한'

1)시에서 '쳐다만 보고 있었다', '입만 벌릴 수 밖에 없었던 시간'등의말이 공명하는 속도의 힘, 그것은 우리의 제어의 의지를 떠나버린 폭력을 암시하고 있다. 분명히 충돌하기 전 브레이크를 밟을 시간은 있었다. 하지만'저 혼자의 힘으로 달려 가'는 속도에 실려 나는 주체성을 상실하고 속도에'몸을 맡기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빠름으로 대변되는 습관과 삶의 속력이며'속력에 취해버린', 무방향성과 무정위의 속력이다. 2)시에서 그는 이 예리한 시간의 난도질을 피하기 위해 그는 '건물'속으로 '문서 속으로 컴퓨터 속으로 회의 속으로 전화속으로 다시 도피한다' 이습관은 무서운 폭력이다. 그런 줄 알면서도 그는 오래 세차게 길들여져 온 이 습관에서 떠나지를 못한다. 이는 본래적 정서로부터 스스로를 분리시키는 자기기만의 형식이다. 그도피는 욕망에의 기생이며 환상으로서의 지위를 넘어서지 못한다. 3)시에서그는 모순된 욕망의 양극에서 매달려 그 양쪽의 무게를 감당하고 있는 육체를 그리고 있다. 본능은 이미 그의 의지를 넘어서 있다. 의지와 관계없이'어서 핥으려고 부리나케' 나오는 맹목적인 본능만이 꿈틀댈 뿐이다. 육체는난폭한 힘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거쳐 왔을 또 하나의 육체를 먹고 싶은 반사적인 욕망에 사로잡혀 있다. 그는 여기에서의 삶이 '환각의 맛과 냄새에서잠시도 벗어날 수 없는 먹자골목'이라는 것을 안다. 그것은 가득 채우려고하는 욕망으로 나타난다. 4)시는 도살 직전의 물먹인 소에 대한 묘사이다.표면적으로 인간의 비인간적인 면을 드러내려는 것처럼 보이는 이 시가 정작드러내려하는 것은 도살되는 소의 현실보다는 채움과 비움의 변증법이다. 살속으로 들어오는 물은 '빈틈'을 모조리 막아버린다. 그것은 소의 울음을 없애고 마침내는 파리떼로 실감되는 앵앵거리는 한떼의 공기들마저 마시지 못하게 한다. 틈이란 무엇인가. 뒤에 언급하게 되겠지만 그것은 사물과 사물사이에 생명이 드나들게 하는 공간이다. 그것은 공간으로 된 살아 있는 육체이다. 소는 채우려는 욕망에 의해 그 공간을 잃어가는 '마음'의 풍경이다.5)시에서 화자는 복잡한 거리에서 머리통보다도 크게 입을 벌리고 우는 아이를 본다. 하지만 그는 울음 소리를 전혀 들을수 없다. 거리는 오히려 고요하고 적막하다. 그는 이 침묵 속에서 친근함을 느낀다. 그러나 이 고요의 정체는 '끊임없이 흔들리고 부딪치고 긁히고 떨어지고 부서지는', '아이 울음 하나 새어들어올 틈 없이 빽빽한 소리'이다. 그것은 '단단한 돌멩이'처럼 뭉친얽힌 소리이다. 가득차 있음으로 다른 소리를 받아 들일 수 없는 상태 속에서 나는 '불안이 내장처럼 한꺼번에 거리에 쏟아져나오지 않을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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