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소설-도시의 푸른나무(31)

노경주의 손은 작다. 장갑은 끼었는데도 그렇다. 내가 그녀의 손을 쥐어 준다. 노경주가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댄다. 로션 냄새가 은은하다. 팔과 옆구리로 따뜻한 느낌이 건너온다. 그녀는 말이 없다. 내게 묻기를 아예 포기한 모양이다. 새근거리는 그녀의 숨소리가 들린다.한참을 걸었다. 노경주의 발이 무겁게 옮겨진다. 멀리로 환한 불빛이 보인다. 불빛 뒤로 네온사인이 반짝인다. 주유소 앞에서 우리는 멈춰 선다. 삼거리다. 주유소에 체인을 감는 차들이 있다.

"그냥 두고 가겠어. 내일 아침에 끌고 가지 뭘. 차라리 걷는 게 빠르겠어"코트를 입은 사내가 주유원에게 말한다.

"시우씨, 걸어 갈 수 있겠죠? 이제 5킬로 정도 가면 온주시예요"노경주가 입김을 뿜으며 말한다.

"예"

나는 노경주에게 꾸벅 절을 한다. 참으로 고마운 아가씨다. 나는 이제 빠르게 걸을 것이다. 인희가 보고 싶다. 다음이 인희엄마, 다음은 미미다. 나는걷기 시작한다. 눈은 계속 쏟아진다. 발목까지 눈이 채인다."시우씨!"

뒤에서 부른 노경주의 목소리다. 그녀가 눈을 차며 뛰어온다. 어깨에 멘 핸드백이 출렁댄다. "날 여기다 버려두고 가면 어떡해요. 차도 몰수 없고. 자취방으로 돌아가긴 너무 멀리 왔구"노경주가 뾰로통해져 말한다. 인희가 곧잘 그랬다. 뭐든지 자기 하자는대로 하자 했다. 인희엄마가 무슨 일을 시키면 인희와 놀아줄 수가 없었다.

"데, 데려다 주께요"

나는 돌아선다. 노경주의 차까지 바래다 주고, 나는 다시 차를 밀면 된다.그녀가 함께 걷는게 싫지가 않다. 노경주가 망설인다. 주위를 살핀다."저기서 쉬어 갈까요?"

노경주의 목소리가 떨린다. 나는 그녀의 눈길을 따라, 본다. 네온사인이 깜박이고 있다. 삼층집이다. 아래층은 식당이다. 이층부터는 잠자는 데다. 분홍빛 불빛이 새어 나오는 창도 있다.

노경주가 다시 내 팔을 낀다. 우리는 삼층 집 쪽으로 걷는다. 일층 현관앞에선다. 노경주가 내 팔을 끈다. 그녀는 환한 일층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나를끌고 이층 계단으로 오른다.

"아무 일도 없겠죠. 쉬었다 내일 아침에 가면?"

노경주가 내 팔에 매달려 묻는다. 나는 잠자코 계단을 밟는다. 나또래 종업원이 우리를 맞는다. 눈이 오니 오늘은 꽉꽉 차는데요, 하고 종업원이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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