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화서'서 정보통신 총아로

1885년 서울 인천간 전신이 개통된지 1백 10년, 1895년 5대의 자석전화기가가설돼 근대적인 의미로서의 통신인 전화가 도입된 지 1백년, 통신의 역사는다른 모든 문명의 발달에 앞장서서 획기적인 업적을 남겼고, 우리는 정보획득과 직결되는 통신의 발달정도가 그 나라의 국력과 비례하는 시대에 살고있다.인편, 봉화, 역참, 파발마등을 통해 전해지던 각종 통신수단은 우편, 전화시대를 거치면서 무선호출, 휴대폰, 광케이블, 통신위성, 영상회담, 전화와 컴퓨터가 연결된 뉴미디어통신으로까지 발전하고 있지만 불과 10여년 전까지만해도주된 통신수단은 우편과 전화였다. 우편은 전달의 한계성으로 인해 비교적 발달이 둔했지만, 전화는 무한한 발전가능성과 함께 각종 신기기와 결합해 끊임없이 변천하고 있다.

우편은 1884년 4월 우정총국이 설치되고 그해 11월 문위우표가 발행돼 그 첫시발을 알렸다. 1945년 6백46개의 우체국은 1개면단위의 1개 우체국 정책에따라 93년말 현재까지는 우편취급소를 포함해 3천3백10개소가 됐고 우편물소통량도 해방직후인 46년 6천7백47만통에서 29억6천만통에 이르는 양적 증가가 이뤄졌다. 반면 전화는 각종 기술의 발달로 과거에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현실을 이뤄냈다. 1885년 9월 한성전보총국의 개설로 시작된 전화의 역사는 1895년 궁중의 궁내부에 최초의 자석식전화를 개통했다. 당시 전화는 '텔레폰'을 음역해 '덕진풍', '득률풍'으로 불렸고 '말 전하는 기계'라는 뜻으로 '전어기'라고도 불렸다. 조선시대 마지막 황제 순종은 부왕인 고종의 능에 전화를 설치해 아침, 저녁으로 전화를 통한 '전화곡'을 했다는 기록도 보인다. 그러나 전화의 대중화는 요원해 45년 전국의 전화가입자는 4만4천8백77명이었고 그나마 6·25전쟁으로 대부분의 통신시설이 파괴돼 50년 전화가입자는 1만5백7명에 지나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회발전이 그렇듯 통신분야의 발달도 3공화국의 흐름과 일치한다·정부의 '통신사업 5개년계획'이 4차례에 걸쳐 추진되면서 62년 12만6천회선, 75년 1백만회선 돌파, 87년 1천만회선 돌파를 거쳐 94년말 현재는 2천만회선을훨씬 넘어서 세계 8위의 시설보유국으로 서는 엄청난 발전을 보였다.양적팽창에 비례해 전화가입자들은 70년대 중반까지 전화가설을 위해 갖가지대가를 지불해야 했다. 전화가입권 매매여부로 분류되던 '백색전화', '청색전화'가 그 대표적인 것이다. 이는 전화국에 비치된 카드의 색깔을 표현한것이지만, 전화기색깔인 것으로 착각한 가입자들이 당시 전화기의 보편적인색깔이던 흑색보다 흰색을 선호한 웃지못할 일화도 남겼다. 매매가 가능했던'백색전화'는 전화신청후 2~3년이 걸리던 보급지체로 대구시내 변두리 집한채 값이 될 정도로 고가가 됐고 당당히 재산목록에 오르기도 했다.궁중에 전화를 걸었다가 고종황제가 받자 놀라 전화를 끊었다가 불경죄로 좌천된 외교주사 황우찬에서 부터 시작하는 전화에 관련된 각종이야기들은 70년대까지 갖가지 재미있는 화제를 만들어 냈다. 젊어서 사업을 했던 관계로70년대초 전화를 가설했던 대구시 달서구 성당동 문윤화씨(68)는 집과 사무실에 각각한대씩 전화를 놓았지만 제대로 보급되지 않아 하루종일 통화는 집하고만 하기가 일쑤였다 면서 행여나 전화기가 부서질세라 수화기와 다이얼만 보이는 나무상자에 씌워뒀었다 라고 했다. 배기복 동대구 전화국장은 70년대초 전화청약공고가 나면 사람들이 워낙 몰려 전화국 앞에서 줄을 서고담요등을 준비해 밤을새곤 했다 면서 서울로 시외전화를 한번 하려면 반나절이나 걸려 차라리 열차를 타고 가는 편이 빨랐으며 좁은 우체국이 떠나가도록 소리를 질러야 해 자석식교환기 시대의 전화를 '울화통'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고 회상했다. 또 대충위치만 알아도 교환수가 척척 전화를 대주고주문배달이 많은 가게에서는 교환수에게 뇌물을 주고 자신의 가게에 전화를바꿔달라고 했다는 일화도 있다.

60년대의 전화는 일명 딸딸이로 불리던 자석식 교환기를 사용해 교환수가 수동으로 연결시켜 주었지만 60년대 후반 '체신 1호'라는 다이얼식 전화기가등장했다. 버튼식 자동전화기는 80년대 이후에 등장했고 전자식 교환기가 개발돼 87년에는 농어촌 지역에도 완전 자동화되면서 전국 자동전화시대를 맞았다. 71년서울 부산간 장거리 자동전화(DDD)가 개통됐고 70년 금산제1위성지구국 개통으로 시작된 국제 통신은 93년까지 금산의 제4위성지구국, 보은의 1, 2, 3위성지구국이 개통돼 북한을 제외한 전세계 모든 국가와 국제통화가 가능해졌다.

이러한 발달은 82년 한국전기통신공사가 발족되면서 획기적으로 이뤄졌다.한국전기통신공사는 3백78개 전화국에 연간매출액이 5조2천여억원에 이르는대규모 기업으로 성장하면서 82년 무선호출사업(1만회선) 84년 이동전화서비스업(수도권의 3천회선)을 시작했다. 92년에는 전국 10개 민간 사업자의 무선호출사업이 허가돼 무선호출과 무선통신의 폭주시대를 맞고 있으며 오는 7월에는 통신위성인 무궁화호가 발사될 예정이다.

미래의 통신산업은 전세계를 연결하는 해저 케이블망 가설, 가입자가 직접선택하는 전화비디오 서비스(VOD), CATV의 대중화, 초고속전용 통신망구축,이미대중화된 컴퓨터를 이용한 PC통신망, 데이터 통신망으로 발전해 한 치의미래도 예상할 수 없는 속도로 발전되고 있다.

〈정지화기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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