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95건강한 사회-가족이기주의

"95년 3월 셋째주 호정이네 가족신문 4면-'거울'.아버지는 우리들과 함께 화분 분갈이하겠다는 약속을 어기셨다. 그러나 목요일과 금요일 이틀 연속 우리 숙제를 봐주셨다.

어머니는 멀리 강원도에 있는 소쩍새마을에 다녀오셔서 좋은 얘기를 해주셨다. 소쩍새마을 후원금을 내기로 하셨다. 물론 호정이와 호영이도 보태야지.호정이는 토요일날 전자오락을 무려 2시간이나 해서 어머니께 혼났다.호영이는 감기에 걸려서도 놀이터에 나가겠다고 우겨 부모님을 속상하게 했다"

국민학교 5학년생인 장호정양(11·경북 포항시 상도동)의 가족신문 마지막면에는 항상 '거울'이 걸려있다. 2주일동안 가족들의 생활은 이 거울을 절대로피해가지 못한다. 한달에 두번씩 이 거울을 비춰보며 생활을 반성하게 되는것이다.

호정이의 어머니 김영언씨(37). "가족회의를 하면서 한주일동안 이런저런 잘못된 점을 서로 지적해 줬지만 회의가 지나면 그로써 끝인 경우가 많았어요.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어 생각해낸게 가족신문에 반성을 글로 남기는 것이었지요.확실히 활자로 되어 증거가 남는다는게 무서운가 봐요. 참 많이 고쳐져요"

김씨는 처음에는 늦잠이나 방청소 안하는 것 같은 '일상적인 반성'이 많았는데 이제는 골목길청소를 걱정할 만큼 반성의 '격'이 높아지고 있다고 은근한자랑도 덧붙였다.

호정이네는 가족신문을 통해 '담안의 가족'에서 벗어나 자신들이 살고있는마을을 생각하는 단계에까지 다다른 것이다.

사실 세계가 알아주는 한국인의 억척스러움도 '담안의 가족', 즉 가족이기주의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같은 가족이기주의가 때로는 극성과외, 부정입학과 같은 사회문제의 형태로 가시화되어 나타나기도 하지만 대개는 '가족애'로 포장되어 덮여 넘어가기가 일쑤였다.

평생운명공동체라 할 가족의 단결력은 자칫 배타적인 사랑이 되어 가족이기주의로 흐르기가 쉬우며 최근에는 '담밖을 모르는' 가족애속에 자라나 사회적 적응력을 잃은 마마보이, 마마걸을 길러내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특히 마마보이 마마걸 같은 한자녀시대의 또다른 결과물인 이같은 반쪽사회인은 가정밖에서는 치유가 힘들다는 진단이 덧붙여지기도 한다.가족이기주의의 그늘을 벗어나는 길은 이것을 발전적인 에너지로, 우리가족만이 아닌 사회와 세계를 향한 억척스러움으로 전환시키는 길밖에 없다."사실 아이들에게 이웃집이 자기집앞도 청소 안하는데 왜 우리가 그것까지해야하는지 이해시키는게 쉽지만은 않았어요. 하지만 일요일 하루 직접 청소해보게 하니까 의외로 빨리 생각이 고쳐지게 됐어요" 김씨가 터득한 가족이기주의 치유법이다. 우선 몸으로 부딪쳐서 해보고 나면 말로 설명할 수 없는만족감을 느끼게 되고 그 느낌은 몸에 각인되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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