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4.19혁명 35주년 이모저모

○…3·15 부정선거에 항거,시위를 벌이다 진압경찰의 최루탄을 눈에 맞고숨짐으로써 4·19 혁명에 불을 당겼던 김주열열사(당시 17세)의 누나 영자(58),경자씨(53)와 남동생 길열씨(39)가 18일 오후 4·19 국립묘지를 찾았다.이날 이들 3남매는 김열사의 사진을 가슴에 안은채 묘비를 부여잡고 오열,지켜보는 이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김열사의 동생 길열씨는 "남원에 있는 형님 묘지도 잘 정비됐고 4·19 묘역도 국립묘지로 지정돼 새로 단장한 걸 알면 형님이 기뻐할 것"이라며 "어머니가 살아계셨더라면 더욱 좋았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표시.또 이날 오후 김열사의 동창생인 남능스님(56·속명 노치준·경남 울산시 백양사)이 김열사의 묘비 앞에 무릎을 꿇은채 두손을 모았다.남능스님은 당시 김열사와 함께 시위대의 전면에 섰다가 경찰에 붙잡혀 고문끝에 1년 이상을 병원에서 지내다 경찰관으로 있던 친척이 시위대에 발포했다는 이유로 양심의 가책을 느껴 자살하자 이에 충격을 받고 통도사에 입산,고행의 길로 들어선뒤 매년 4월 18일 밤이면 당시 희생자를 위한 철야불공을드리고 있다는 것.

○…4·19 혁명 제35주년을 하루 앞둔 18일 서울 수유리 4·19 국립묘지에는그날의 뜻을 기리기 위해 4·19 유가족을 비롯해 일반인,학생 등 7천여명의참배객들이 줄을 이었다.

이날 오전 일찍 이천수 교육부차관 등 교육부 관계자 13명이 참배한 것을 시작으로 서울 중동고와 명지고의 교사, 학생들이 단체로 묘지를 찾아 당시 혁명의 대열에 참가했다 희생당한 동문선배들을 추모하는 등 오후 늦게까지 참배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소복을 말끔하게 차려입고 묘소 앞에서 통곡하는 할머니와 영문도 모른채 부모의 손에 이끌려 온 어린이들의 모습이 4월의 하늘을 더욱 서럽게 만들기도.

○…이날 오후 참배객중에는 '4·19 할아버지'로 불리는 김봉섭할아버지(78·상업·전북 완주군 삼례읍)일가 3대가 동시에 묘소를 찾아 눈길을 끌기도.김할아버지는 4·19 당시 경찰의 총탄에 피를 흘리며 숨진 어느 학생의 사진을 신문에서 보고 참을 수 없는 분노심을 느껴 가족 반대를 무릅쓰고 이날이후 3년 동안 상복을 입은채 서울, 마산, 부산 등의 유가족을 찾아다니며위로했다는 것.

김할아버지는 또 그 이후에도 매년 4·19묘소를 참배하는 것 뿐만 아니라4·19관련 행사가 있으면 어디든지 달려가 참석하는 등 숨진 넋들의 뜻을 기리는데 한평생을 바쳤다는 것.

이때문에 사람들로부터 '4·19 상주'라고 불리기도 한 김할아버지는 이날 전북 이리에서 음식점을 하는 큰 아들 용기씨(49)와 큰 손자 영민씨(28·대교방송 PD)와함께 3대가 4·19묘소를 찾아 4·19의 뜻을 자손들에게 전하겠다는 자신의 소원을 마침내 성취.

○…오후 3시께 고려대생 5천여명의 도착을 시작으로 광운대와 서울산업대생등 모두 6천여명에 달하는 4·19 기념 마라톤 참배행렬은 이날 해질 무렵까지 이어져 이들이 통과하는 구간마다 교통통제가 실시되는 등 인근 교통이한때 마비.

고려대생 5천여명이 도착하자 4·19묘지는 참배객들로 발디딜 틈 없이 가득차는 바람에 학생들 대열이 묘지밖 1·5㎞지점까지 길게 늘어서 뒤늦게 도착한 광운대 학생 5백여명은 도로에 앉아 휴식을 취하며 차례를 기다리는 모습.

○…4·19묘역이 국립묘지로 새 단장을 하고 준공식을 가진 17일 이후 이틀동안 이곳을 찾은 일반 참배객들의 숫자가 예년에 비해 2배 가까이 늘자 묘지 관리소측은 앞으로 4·19 묘지가 민주화의 산 교육장으로서 제역할을 해낼 것이라고 확신.

4·19묘지의 한 관계자는 "단체 참배객을 제외하고 일반참배객들의 숫자를보면 예년에 5백여명에 불과하던 것이 어제와 오늘은 각각 1천여명이나 이곳을 찾았다"며 "앞으로 이곳이 민주화의 성지로서,그 교육장으로서 각광을 받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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