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난 인명을 앗아가는 사고를 겪을 때마다 머리를 맴도는 의문이 있습니다. 무고한 생명들의 떼죽음을 야기한 것이 과연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하듯 사소한 부주의 때문일까요. 우리 사회가 언제든지 대형사고를 낼 수 있는 구조적가능성을 안고 있는 고위험 사회로 '발전'하게 된 까닭은 도대체 무엇입니까.웬만한 사고가 아니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뿐만 아니라 아무리 커다란 사고라 하더라도 금새 잊어 버리는 것을 보면, 이런 의문들은 더욱 더 증폭됩니다.사회의 발전이 구성원의 도덕적 발전을 수반하지 못할때 우리는 과연 발전이라는 말을 입에 올릴 수 있을지 회의적인 생각이 듭니다.우리는 과연 발전했나
거듭되는 사고에 '후진국형'이라는 수식어가 붙여지는 것을 보고 발전이라는말이 그저 부끄럽게만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인적 조직과 관리체계가 고도로 복잡해진 사회구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였다고 질타하는 기능주의 발상에는 문제를 아주 잘못 파악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사회에 대한 최대의도전은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도덕적 무관심과 불감증입니다. 자신의 생명을귀하게 여길 때 우리는 비로소 다른 사람의 생명도 존중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생명이 유일하다는 사실을 안다면, 생명에는 귀천이 없음을 알게 됩니다.자신의 생명이 유한함을진정 통찰한다면, 짧은 삶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책임의식을 가지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하루살기에 너무 바빠서 이런 사실을, 생명의 귀중함을 잊은 것은 아닌지 매우 불압합니다.커다란 사고가 아니더라도 매일 매일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교통사고도 세계 1위이고, 낙태로 연간 1백50여만명이 생명을 잃고 있다는 사실도 분명하지만 이에대해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환산하면 매일 4천1백명의 생명이 인공유산으로 죽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고서도 우리는 발전이라는 말을 쉽게 입에 올릴 수 있겠습니까. 현대적 편의를 위해서 감수해야할 희생으로는 너무나 지나치다는 생각이 듭니다. 생명에 대해 조금이라도 경외심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가 그렇게 쉽게 낙태를 하지도 그렇게 거칠게운전을 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법으로 규제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낙태가 성행하고 있는 현실을 보면, 생명문화가 없는 법은 아무 쓸모가 없지 않나 하는생각이 듭니다.
3700년 전에도 이렇지는 않았습니다. 여러모로 '미성숙한' 사회였음에도 불구하고 고대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 법전은 생명의 존엄성을 극명하게 중히 여기고 있습니다. 허위증언을 하면 처형을 하고, 양반이라도 국가재산을 유용하면 사형을 선고하였습니다. 수술 후 양반이 죽으면 의사의 손을 절단하는 형벌을 보면 고대 신분사회의 후진성에 대해 고소를 금할 수 없지만, 함무라비 법전은 유산에 관한 한 태아와 성인의 생명에 대해서는 아무런 차별을 두지 않고있습니다. 양반을 살리면 온 10세켈(약 80g)을 상금으로 주었는데, 이는 양반의 딸을 폭행하여 유산시켰을 때 부과하는 벌금과 동일하였습니다. 허위증언은공공연히 이루어지고 세금도둑들도 버젓이 돌아다니는 판국인데, 내 아이의-그것도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의- 생명을 내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 무엇이문제냐고 반박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낙태도 위험수위
낙태법이 지켜지지 않는 이유는 아마 두 가지일 것입니다. 하나는 태어나지않는 생명에 대해서는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소유권적 생각이고, 다른 하나는인격체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이 문제에 관해서 물론 많은 이론들이 있을 수있습니다. 그러나 생명에 관한한 이론보다는 우리의 직관이 더 많은 것을 말해줍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지 않고서 우리는 결코 인간을 소유의 대상으로 생각할 수 없습니다. 태어난 생명도 그렇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생명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의 몸과 생명을 마음대로 하는 자가 다른 사람이 자신의 몸과생명을 귀중히 다루기를 바랄 수있겠습니까. 이 물음에 대해 교황의 가장 최근 회칙에서의 말씀은 종교를 떠나서 많은 것을 생각케 합니다. "태아가 이미인간이 아니라면 인간으로 자랄 수 없다" 인간이 자신을 중하게 여기지 않는다면 어찌 인간을 잉태하겠습니까. 발전을 위해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았던 것이생명 경시라는 역설적 결과를 가져왔다면, 이제는 진정한 발전을 위해 자신의몸과 생명을 귀하게 여길 때입니다.
〈계명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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