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특별기고-무엇을 위한 '이승만되살리기'인가

금년들어 갑자기 역사의 시계추가 거꾸로 가고 있다. 최근 몇몇 언론사를 중심으로 펼쳐지고 있는 '이승만 되살리기'운동이 그것이다.지난 2월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이승만과 나라세우기'전시회가 열렸고 4·19혁명 제35주년기념일이 열흘도 채 지나지 않은 4월29일부터는 대구를 시발로전국순회전시에 들어 갔다.

거꾸로 가는 시계추

이같은 전시회를 주관한 모일간지는 '한나라의 국부를 이토록 폄하하는 국민이 어디 있느냐'고 자책하면서 광복 50주년을 맞아 이승만의 생애를 되짚어 봄으로써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대통령' '4·19를 유발한 독재대통령'등비판적 시각과 부정적 인식을 극복하고 이승만을 나라를 세우고 일으킨 대통령으로 정당하게 평가함과 동시에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일깨우는 국민교육의장으로 역할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

E·H 카의 지적처럼 '역사는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이기 때문에 '이승만과나라세우기'전시회가 광복50년을 맞아 이승만에 대한 잊혀진 역사적 자료를 발굴하여 오늘의 시각에서 재평가를 시도하는 노력에는 경의를 표한다.그러나 '이승만 되살리기'굿거리가 독재자 이승만 개인에 그치지 않고 그동안 이땅을 짓눌러 온 군부독재자와 그 추종세력에게까지 '대한민국 정통성'의면죄부를 안겨주려는 조짐에 우리는 의혹과 우려를 금할 수 없다.'기승전결'이라는 묘한 논리로 이미 전적대통령의 재평가가 바람을 일으켜독재자일지라도 공적만 뚜렷하면 나라의 정통성을 이어온 국가지도자로 지칭하고 있다.

김영삼대통령은 취임 첫해에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수유리4·19묘지를 참배한 자리에서 문민정부의 정신적 바탕이 4·19정신에 있음을분명히 한바 있다. 그럼에도 '5·16'을 '쿠데타'로, '12·12'를 '쿠데타적 사건'으로 규정하면서도 '5·18'에 대해서는 훗날 역사적 평가에 맡기자고 말하였다. 3당합당의 민주자유당 총재로서의 김대통령의 태생적 한계를 모르는 바아니지만, 김대통령의 역사인식이 이럴진대 '이승만 되살리기'의 파장이 어디까지 이를 것인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독재에 면죄부 우려

여기서 우리는 광복50년의 역사를 평가함에 있어 '대한민국의 정통성'이 무엇인가를 새삼 깊이 인식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이승만 초대대통령으로부터김영삼 14대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거쳐온 정권의 승계과정이 대한민국의 정통성은 아닐 것이다. 북한은 김일성을 해방후 지금까지 위대한 수령으로 모시고있는데 우리는 그보다 못하지 않은 이승만이라는 독재자 국부가 있음에도 이를추앙하지 않은 것이 흠이 되지는 않는다. 아무리 이승만이 건국의 아버지라 할지라도 그가 민주주의를 파괴한 독재자일때는 우리는 그를 서슴없이 물리쳐 민주주의를 사수하는 국민임을 자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이승만을 독재의 과오보다 그 공적을 높이 평가하고 '쿠데타'또는 '쿠데타적'으로 정권을 탈취한 헌법파괴행위나 혹심한 인권탄압등 반민주적 작태까지 몇가지 공적때문에 나라의 정통성을 부여받게 한다면 이 나라 건국이념인 자유민주체제에 대한 우리의 헌법수호의지는 참담하지 않을 수 없다.그리하여 '이승만 되살리기'가 추구하는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일깨우는 국민교육의 장'이 독재자의 망령을 불러들이는 것이라면 우리는 단연코 그 저의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러면 과연 '대한민국의 정통성'은 무엇이며, 무엇이어야 하는가? 한마디로대한민국의 정통성은 3·1정신과 4·19정신에서 찾아야 한다.대한민국 헌법전문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라고 시작한다.따라서 이 나라를 지키는 헌법정신은 3·1정신과 4·19정신이다. 3·1정신은대외적으로 자주독립의 정신을 나타내고, 4·19정신은 대내적으로 인간의 존엄과 가치에 기초한 자유민주주의정신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광복 50년을 맞아 우리가 깊이 천착해야 할 역사적 과제는 '이승만되살리기'가 아니라 이 나라가 건국이래 반세기에 걸쳐 3·1정신과 4·19정신을 얼마나 계승 발전시켜 왔으며 실천해 왔는가에 대한 진지한 성찰에 있다.되살릴것은 4·19정신

이승만을 되살리는 길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일깨우는 길이 아니라 독재자와 찬탈자를 단죄하여 자유민주주의를 올바로 지켜나가는 것이 이 나라의 정통성을 확립하는 길이다.

건국초기에 일제 35년을 청산하지 못한 역사적 과오를 반복하여 문민정부 초기에 군부독재 30여년을 여전히 청산하지 못한 채 개혁의 길목에서 방황하는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물어야 할 때이다.

독재자들의 주위에서 온갖 반민주적 행동을 일삼으며 권력을 누리던 자들이이제 재야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민주투사인양 발호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암울했던 부끄러운 과거를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4월회회장·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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