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달의 독립운동가-장진홍선생

국가보훈처는 6월의 독립운동가로 1927년 조선은행 대구지점을 폭파하는등항일투쟁으로 일관하다 순국한 향토출신의 창여 장진홍선생(1895~1930) 을 선정했다.국가보훈처가 광복50주년을 맞아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한 12명의 의사는 탄신일, 의거일, 순국일등이 50주년, 1백주년에 각각 해당되고 경축일및 각종 기념일과 관련있는 분들이다.

장선생은 올해로 탄신 1백주년, 순국 65주기를 맞았지만 그의 혁혁한 항일투쟁사는 묻혀와 후손과 뜻있는 사람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그는 1895년 6월6일 경북 칠곡군 인동면 옥계리(현재 구미시)에서 출생, 인명학교(현재 인동) 재학시절 우국지사 장지필선생의 항일운동에 감명을 받아19세때인 1914년 조선보병대에 입대, 2년간 군사지식을 습득했다.그후 비밀항일결사조직인 광복단에 가입, 만주 봉천성과 연해주 일대를 누비며 무력항쟁과 군사교육을 통해 독립군을 양성했다.

1919년 3.1 만세운동을 진압하던 일본군이 수많은 양민을 학살하고 체포 고문하자 이에 분개, 전국을 돌며 일본의 잔학상을 조사, 폭로한 공로가 있다.그는 무력항쟁만이 자주독립을 재촉할 수 있다고 판단, 폭탄제조법을 배워약장수로 가장해 일제의 관공서,한인착취기관 폭파와 일본인 고관 암살에 나섰다.

1927년 10월28일 조선은행 대구지점은 장선생의 폭탄세례로 무참히 무너졌고은행원, 경찰관등 5명이 중상을 입었다.

일제의 수사망과 경계망이 좁혀오자 그는 더 이상의 국내 항쟁이 어려워져일본으로 피신, 또 다른 거사를 계획했다.

장선생은 29년2월 일본서 천황궁과 중의원, 경시청 폭파를 구상하던 중 검거돼 이듬해에 사형선고를 받았다.

"일제에 의해 치욕스런 죽음을 당하느니 차라리 깨끗이 죽겠다"며 그는 사형집행일을 하루 앞두고 망국의 한을 품은채 옥중에서 자결했다.그때 나이 35세.

칠곡군 왜관읍 석전리왜관공원내에 세워진 선생의 기념비는 53년 향토출신인 기아산업의 창업주 김철호씨 유언으로 건립됐다.

또 지난해 장선생 전기집 발간으로 그동안 활동이 부진했던 기념사업회(회장이우경)가 기념관 건립등 각종 사업추진에 나서는등 활기를 띠고 있다.구미에선 동상건립추진위가 구성돼 올해안으로 동상을 완공할 것으로 보인다.

기념사업회와 후손들은 오는 17일 왜관 기념비에서 도단위 규모의 추모행사를 가질 계획.

장선생의 장남 형옥옹(81)은 "뒤늦게나마 선친의 항일투쟁사가 재조명돼 기쁘다"며 기념관만 건립되면 눈을 감아도 여한이 없다고 말했다.〈칠곡.이창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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