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4일 정오, 러시아 남부 인구 10만명의 조용한 도시 부데노프스크시민들은 갑작스런 총소리에 놀라 거리로 뛰쳐나왔다. 시민들의 눈앞에는 박격포와 자동소총으로 무장한 괴한들이 거리를 질주하고 있었다. 순식간에 시의회, 은행, 경찰서등 주요건물을 기습하고는 시내의 한 병원을 점령, 의사와 간호사, 환자를 포함, 1천5백명의 인질을 붙잡았다.이들은 러시아 정부의 조국 체첸에 대한 군사개입 중단을 비롯,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과 조하르 두다예프 체첸대통령의 즉각적인 회담을 요구했다. 바로 체첸반군이었다.
지난1월, 한달이 넘는 체첸인의 끈질긴 저항에도 불구하고 체첸의 수도 그로즈니가 러시아군에 의해 함락되자 세계 각국은 체첸의 운명도 다한 것으로생각했다. 또한 두다예프 대통령이 "러시아가 즉각 공습을 중단하지 않으면전쟁은 나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러시아전역으로 확대될 것"이라고 경고했으나 러시아는 이를 협상에서 조금이나라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한 단순한협박으로 여겼다.
계속적인 공세를 멈추지 않던 러시아는 급기야 체첸저항세력의 '안전소탕'을 선포했고 3년2개월간의 체첸사태는 일단락 되는듯 보였다.하지만 두다예프의 말을 그저 협박으로 생각했던 러시아 당국과 국제사회는 경악했다. 체첸에서 1백50여㎞나 떨어진 한 도시에서 그의 말이 그대로실행된 것이다. 하나 다른 점이라면 부데노프스크의 인질사태는 두다예프의의사와 상관이 없기는 커녕 철저하게 그에 의해 계산되고 모든 배후 조종까지도 그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두다예프의 말을 실행에 옮긴 인물은 텁수룩한 수염탓에 한층 나이가 들어보이는 30세의 샤밀 바사예프. 이미 체첸민족에게는 '전쟁영웅'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91년 러시아가 체첸에 치안병력을 투입하자 러시아 남부 페티고르스크에서 1백54인승 여객기를 납치했으며, 이웃 압하지 공화국의 독립투쟁을 돕기위해 자원병을 데리고 2백50㎞의 원정길에 올라 성공하고 돌아오기도 했다. 한마디로 게릴라전에 있어 전설적인 인물이었다.병원점령 5일만에 이 체첸반군들은 1백70명의 인질을 석방하고 코카서스의산악지대로 잠적해 버림으로써 일단 사태는 해결됐다. 하지만 아직도 러시아는 그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보리스 옐친 대통령은 부데노프스크 인질사태의 책임을 물어 세르게이 스테파신 연방방첩본부장과 빅토르 예린 내무장관을 해임했으나 이것은 피상적인 조처에 불과했다. 러시아인들의뇌리에 새겨진 체첸인들에 대한공포심은 쉽게 치유될 수 없는 것이었다.바로 테러에 대한 공포였다.
1859년 제정러시아에 합병된 후 약 1백40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체첸민족은 러시아에 동화되기는커녕 갈수록 이슬람민족으로서의 자긍심과 함께 러시아에 대한 반감을 키워갔다. 게다가 1940년대 소련의 체첸민족 강제이주정책으로 80만명의 인구중 24만명이 이주 도중 목숨을 잃게 되자 대러시아 적개심은 한계를 넘어서게 된다. 이러한 적개심은 러시아내 범죄로 나타나 '체첸 마피아'라는 말까지 생겼으며, 이미 체첸사태 이전부터 러시아인들에게체첸인은 '세계에서 가장 잔인하고 악독한 소수민족'으로 알려져 있었다.이런 체첸민족이 1991년 독립을 선포하자 러시아내의 여론은 일단 평화적해결이었다. 러시아 의회도 군대의 무력개입을 반대했으나 옐친의 생각은 달랐다. 카프카스지역의 민족적 성향이 워낙 강한 탓에 체첸이 독립을 성취하게 되면 이웃 국가들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칼라치니코프(AK47)소총과 대전차로, 러시아로부터 탈취한 장갑차 몇 대만지닌 1만명이 채 안되는 비정규군이 3백대의 탱크, 수십대의 Mi-8헬기, 수호이25, 27전투기로 중무장한 5만명에 가까운 정규군과의 싸움에서 석달 가까이 버틸수 있는 원동력은 바로 이 강인한 민족성인 것이다.91년11월 두다예프대통령이 취임하며 체첸의 일방적 독립선언으로 야기된체첸사태는 지난해 12월러시아군 공세초기만 해도 길어야 일주일이면 모두해결될 것으로 예상했으나 체첸의 마지막 역습으로 다시금 새로운 국면으로접어들었다.
〈김수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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