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나는 증언한다 광복50년…전일본군 위안부 수기2-(2)안주노역

나를 윽박지른 일본남자가 내게 보퉁이 하나를 주었다. 얼결에 받아 살짝들춰보니 빨간 원피스와 빨간 구두가 들어있었다. 시커먼 고무신도 제대로못얻어 신을 판에 난생 처음 예쁜옷과 구두를 받고 어리숙한 나는 그만 마음이 혹하고 말았다. 그때까지만해도 어디 일본사람집에 데리고가 식모살이라도 시키려나보다 정도로 생각했다.그러나 궁금해서 뭘 물어보려하면 아무말도 못하게 윽박지르는 바람에 입을 다문채 그들 뒤를 따라갔다. 대구역에 도착했다. 친구 분순이도 있고, 설마 딴일이야 있으랴싶어 그들을 따라 기차에 올랐다(나중에야 알게됐지만 분순이는 그때 무태에서 내가 도망쳐온뒤 그 일본남자에게 붙잡혀 끌려다니다강요에 의해 우리집에 와서 나를 불러내게 됐다고 했다)

난생 처음 기차를 탄 탓에 심한 멀미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경주에서내렸다. 그들은여관방 하나에 여자 5명을 집어넣고는 서로 한마디의 말도하지 못하게 했다.

그 여관에서 이틀밤인가 지나는 사이 여자 2명이 새로 왔다.경주에서 다시 상행열차를 탔다. 대구를 지나칠때 차창너머로 우리집부근이 보였다. 갑자기 엄마가 미치도록 보고 싶어 창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엄마~ 이 사람들이 날 끌고간다. 살리도~"하면서 엉엉 우는데 누군가 머리끄댕이를 거칠게 잡아당겼다. 옷보퉁이를 내밀며 이거 도로 줄테니 집에 보내달라며 목을 놓고 울었다. 그렇게 울다울다 지쳐 그만 곯아떨어지고 말았다.일행은 평안도 안주(안주)에서내렸다. 경주에서 합류한 두여자는 어디로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어느 농가에 들어갔는데 노파 한명이 집을 지키고 있었다. 삶은 감자와 수수따위를 밥대신 조금씩 주곤했는데 하도 배가고파 곳간에 있던 능금을 몰래 먹다 들켜 그 일본놈에게 얼마나 두들겨 맞았는지 모른다.

10월말경으로 기억되는데 그때 안주는 이미 매서운 칼바람이 불었다. 우리다섯여자들은 홑옷차림으로 덜덜 떨며 밭에서 무, 배추 뽑는 일을 했다. 소금에 절여 어디론가 가져가는 모양이었다. 우리를 끌고간 일본놈은 무지막지했다. 무심코라도 한마디 말을 하면 다짜고짜 몽둥이를 날렸고, 펌프질이 서툴러 물을 흘려보내도 때렸다. 조그마한 꼬투리라도 있으면 복날에 개패듯때렸다. 한사람이 잘못해도 다섯명 모두가 맞았다. 어떤때는 다듬이 방망이위에 서게한뒤 양손에 물병을 드는 벌을세우고는 조금만 몸이 삐딱거려도몽둥이질을 했다. 도망갈까봐 그러는지 발바닥을 때려 모두가 발이 퉁퉁 부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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