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평생 절개와 지조를 꿋꿋이 지키며 조국해방과 민족통일에 몸과 마음을바친 아버님을 생각할 때마다 아직도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우리들 모습이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 없습니다"대개의 사람들처럼 빛을 쫓는 해바라기 삶을 제쳐두고 일제하에서는 독립운동으로,해방후에는 사회봉사활동으로 나라사랑과 민족사랑의 실천을 위해음지에서만 한평생을 보낸 엄기선여사(67).
그는 부부 독립운동가로 알려진 엄항섭선생(6·25때 납북)과 연미당여사(81년 작고) 사이의 2남4녀중 장녀로 1928년 중국 상해 임시정부 청사 옆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일찍이 10세에 한국광복전선 청년전시공작대에 입대,중국에 우리의참모습을 알리고 일본군내의 한국인 병사를 광복군쪽으로 포섭하기 위한 연극 무용활동을 벌였다.
43년부터 중국측 방송을 통해 일본군내의 한국인들과 국내동포들을 대상으로 일본의 패망 선전공작에 주력하던 중 해방을 맞이했다.
그후 서울대 영어과를졸업한 엄여사는 10여년간 경기도 여주군 대신면에서 중학교교사로 교편을 잡고 후학양성에 심혈을 기울이던 중 주위에 너무나많은 독립유공자 후손과 전쟁 미망인들이 비참한생활을 하고 있는 모습에큰 충격을 받았다.
이에 그녀는 64년부터대전에 있는 '루시모자원'에서 전쟁미망인과 그 자녀들을 보살피는 일을 시작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편 부친 엄선생과 연여사는 1919년부터 상해와 중경 등의 임시정부에서활동했으며 해방이후에도 엄선생은 김구선생을 도와 분단된 광복에 반대,반탁운동을 펼치다 6·25때 북한에 피랍됐다.
엄여사 일가는 그후 부친이 백범선생 편에 선 탓에 정권의 미움을 사 월북인사로 규정되는 바람에 한때 빨갱이 집안으로 몰려 갖은 고초를 겪기도 했다.
다행히 엄여사의 아버지는 지난 89년에 복권이 이뤄져 건국훈장 독립장을,어머니도 90년에 애국장을 서훈받았다.
그러나 그녀는 아직도조국통일을 외치던 아버지와 평생 아버지의 생사도모른채 애태우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모습이 꿈 속에 나타날 때마다 되살아나는 한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엄여사는 "요즘 젊은이들은 반쪽 조국에 살고 있으면서도 그 고통과 한을느끼고 있지 못한 것 같다"면서 "비록 광복절날만이라도 과거 광복과 통일을위해 숨져간 선열들의 뜻을 한번쯤 생각해 보며 통일에의 의지를 가다듬는자세가 필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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