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사람-일제 항거 독립운동 주도 최고령 애국지사 김경하옹

"아직도 눈만 감으면 일제의 총검 앞에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숨져간 어린학생들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독립만세의 외침이 드높았던 지난 1919년 일제의 침략에 항거해 만세운동을 주도하다 옥고를 치른 1백1세의 최고령 생존 애국지사인 김경하옹(미국시카고 거주).

그는 14일 동지들의 혼이 서려있는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 독립공원을 장남득렬씨(68·목사)가 밀어주는 휠체어를 탄채 일일이 돌아보면서 일제에 맞서처절히항거했던 당시를 회상했다.

지난 1895년 평안북도강계에서 출생한 김옹은 영실중학교의 교사로 재직하면서 1919년 4월 8일 강계 지역에서 만세 시위를 주도했다.그는 당시 동료교사 정준, 읍내 교회 장로인 한봉민 등과 함께 21명의동지를 모아 만세 시위를 계획한뒤 실행에 옮겼다.

김옹은 제자들에게 태극기를 만들게 하고 독립선언서를 등사하는 등 치밀한 준비를 한뒤 드디어 강계 장날인 4월 8일 오전 11시 읍내 남장대 교회의종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을 신호로 북과 나팔소리에 맞추어 시위행진을 벌였다.

이 때 동생 명하씨(당시 18세·영실중 4년)가 형을 따라 시위 대열에 따라나섰다가 일본 경찰의 총검에 꽃다운 목숨을 잃은 것을 비롯해 수많은 청년들이 부상했다.

김옹도 대형 태극기를 들고 시위군중의 선두에 서서 만세를 외치다 무차별사격을 가하는 일본 기마헌병에게 붙잡혀 온갖 고문을 받은뒤 6월 신의주지방법원에서 2년 6개월의 형을 받았으나 고문 후유증으로 보석으로 석방됐다.

그는 이후 만주로 도망가 산동성 화북신학교를 졸업하고 1925년 귀국해이숙경씨와 결혼, 슬하에 2남4녀를 뒀으며 장로교 목사로 선교활동을 통한항일운동을 지속했다.

김옹은 지난 49년 11월 서대문 장로교회를 설립, 초대목사를 지냈고 80년장남 득렬씨의 선교활동을 위해 미국으로 건너갔으며 지난 90년 독립운동 공훈을 인정받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오랜만에 고국땅을 밞은 김옹은 서울에 살고 있는 큰딸 수옥씨(67) 집에서귀여운 손자들과 함께 하다 내년 3·1절을 고국 땅에서 보낸뒤 미국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그는 생존해 있는 최고령 애국지사라는 호칭에 대해 "일제 억압에 맞서보이지않는 곳에서 숨져간 수많은 사람들이야 말로 진정한 애국지사"라며 "먼저간동지들앞에 부끄럽다"고 마냥 겸손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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