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96 매일신문 창간50돌 기획시리즈-영남의 젖줄 첫 생태계조사

강(강)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사람들. 까마득한 옛날부터 강가에 옹기종기모여살며 하루 하루 그물을 던지며 고기를 낚아올리던 민초(민초)들. 발을동동걷어붙이고 강가에서 조개를 잡던 아낙들…. 그들의 모습은 빛바랜 수채화처럼 우리의 정서를 끊임없이 잡아당긴다.남쪽 바다를 향해 쉼없이 흘러가는 낙동강에 기대며 의존하던 사람들의 생활은 예전과는 판이해졌다. 고기는 점차 자취를 감추고 그것을 건져 올리던사람들도 대부분 떠나갔다. 낙동강은 이제 일터로서의 기능을 잃어버린 것이다.

대구에서 출발해 밀양 삼랑진 양산등을 거쳐 하류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얼마전만해도 그렇게 흔하게 볼 수 있던 강바닥의 고기들은 거의 사라지고, 공해의 부산물인 수초와 오물찌꺼기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강가에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횟집도 손님이 없는 탓에 썰렁한 모습이다.얼마전만 해도 횟집에 사용하는 고기는 강에서 잡았지만, 요즘 들어서는 대부분 횟집이 양식고기로 손님을 맞고 있다.

경남 밀양시 외곽에 위치한 '경남내수면개발시험장'은 은어 잉어 향어등의낙동강 희귀어종을 인공수정시켜 강에 방류하는 곳이다. 이 시험장은 희귀어종을 조사하기 위해 매년 몇차례씩 낙동강의 큰 지류인 황강과 밀양강의 어류분포조사를 하고 있다. 지난해 밀양강에서는 36~39종, 황강에서는 18~20종이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고 지난5월 밀양강에서는 39종을 채집했다.그러나 이번 낙동강생태조사팀의조사결과는 현재 밀양강에서 34종, 황강에서 26종이 채집됐다.

우리나라 민물고기는 모두 150여종이고, 낙동강에서 발견된 어종이 90여종으로 알려져 있음을 고려할때 크게 줄어든 것이다. 해가 갈수록 고기종류가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는 게 조사팀의 얘기다.

주민들에 따르면 불과 3~4년전 낙동강 하류지역에서 낚시를 드리우면 손쉽게 건져 올릴수 있었던 은어 연어 웅어 황어등도 거의 잡히지 않는다. 가끔1~2마리씩 채집되기도 하지만 낙동강에서는 멸종직전이라고 한다.은어는 날씬한 미남물고기인데다 맛이 좋기로 예전부터 이름높았다. 강폭이 넓지 않고 수심이 깊지 않은 밀양강은 은어를 잡는데 적지라고 한다. 불과 4~5년전만 해도 은어가 밀양강을 거슬러 올라오는 가을철에는 하루밤동안갈구리낚시로 10관(37.5kg)은 무난히 건져올렸다는 게 주민들의 얘기다.'내수면개발시험장'이 지난 71년부터 매년 밀양강, 진양호, 합천댐, 섬진강등 4곳에 3천5백만립의 은어수정란을 방류하고 있지만 큰 효과는 없다고한다. 강에 은어가 거의 잡히지 않는다는 점에 비추어 은어방류가 멸종을 막을수 있을수준에 머물고 있음을 알수 있다. 자연을 파괴하기는 쉽지만 그것을 복구하는데는 수십~수백배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매년 추석직후 밀양에서는 밀양강에 거슬러 올라오는 은어를 잡아 수정란을 빼내 물에 다시 넣어주는 인공부화를 해왔다. 지난해에 은어가 거의 올라오지 않아 인공부화를 하지 못했고, 올해도 확실하게 인공부화를 할수 없을것이라고 한다.

가을철 성인남자의 팔뚝크기 만한 연어는 가끔 잡히는 정도지만 주둥이가삐쭉한 학공치는 없어진지 이미 오래라는 것이다.

잘생기고 맛좋은 물고기로 이름높은 숭어의 경우 봄이면 강을 거슬러 올라왔지만 몇년전부터는 아예 찾아볼수조차 없다. 바다에 살다 하천으로 올라와수정을 하는 이같은 '회유성어종'은 낙동강을 찾아오지 않는 것이다.물고기가 없는데 어부도 온전할리가 없다. 밀양강 하류에서 30여년간 고기를 잡고 있는 최재용씨(62)는 "낙동강에서 어부라는 직업이 없어졌다"고 했다.

밀양에는 어업허가증을 가진 어부가 30명, 삼랑진은 60여명정도이나 전업으로 고기를 잡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낙동철교아래서 고기를 잡아온 배기해씨(42.밀양시 삼량진읍 삼량리)는 "10여년전에는 강가의 조개만 잡아도 충분히생활이 됐다. 87년 부산 을숙도부근에 낙동강하구둑이 건설되면서 조개가없어져 고기를 잡기 시작했지만 이제는 고기조차 없다"고 말했다.어부들은 홍수조절을 목적으로 세워진 낙동강하구둑을 원흉으로 지목한다.낙동강하류에서 물을 막아놓은 탓에 바다고기가 강으로 올라오지 못하는 것은 물론 수량도 줄어들어 오염을 가속화시키고 있다고 말한다.조금더 하류로 내려가면 오염의 정도가 심해진다. 어부의 숫자도 그만큼적다. 양산군 원동, 물금, 김해의 어부들은 대부분 일손을 놓았다. 고기가아예 없지만 어쩌다 잡은 고기는 냄새가 나기 때문이다.

원동면은 10명의 어부, 물금면의 경우 어부는 1~2명만 남아있다. "20년전만해도 40여명의 어부가 있었고 고기만 잡아도 아이들 공부는 시킬수 있었다"는게 어촌계장 유순봉씨(56)의 얘기다.

조사팀의 채병수박사는 "은어등 회유성어종이 하구언축조와 상류지역의 극심한 오염으로 낙동강에서 거의 사라지고 없다"고 말했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