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도시의 푸른나무(204)-도전과 응징(35)

두 주일이 후딱 지난다. 그동안도 나는 옥상에서 살았다. 내가 한 일은 화단 농사뿐이다. 닭똥 거름을 주고 배추씨를 뿌렸다. 젖은 신문지로 흙을 덮었다. 참새가 씨를 쪼아 먹기 때문이다. 자주 물을 주었다. 닷새만에 싹이나왔다. 땅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아버지가 말했다.나는 드디어 목발을 떼었다. 목발을 버렸으나 다리를 절었다. 그날부터 지하업소 단란주점으로 나갔다. 신입 넙치가 웨이터로 있었다.이튿날이다.

순옥이가 주점에 들른다. 검정 노슬립 원피스를 입었다. 의자에 앉자마자채리누나를 부른다. 술을 달라고 소리친다. 채리누나가 냉수잔을 가져다 준다. 순옥이가, 오빠 여기 앉아봐 하고 내게 말한다.

"오빠, 나 취했어. 낮부터 홀짝거린 소주가 두 병이야"

순옥이는 이미 혀가 굳었다. 옥상에 있을 동안, 나는 순옥이가 보고 싶었다. 가슴이 뛴다. 말이 나오지 않는다.

"오빠, 나 욕하지 마. 병원에 있을 때도, 퇴원하고 나서도 가보려 했지.마음은 그랬어. 근데 그렇게 안됐어. 미안해"

순옥이의 눈에 눈물이 맺혀있다. 긴 머리채가 한쪽 얼굴을 가린다. 뺨이팬 여윈 모습이다. 화장도 하지 않았다. 병기가 있다.

"오빠와 함께 강변으로 드라이브하고 싶었어. 강바람 쐬며 손잡고 걷고 싶었지. 물처럼 말없이 어디론가 가고 싶었어. 오빠처럼 멍청한 돌부처가 되고싶었어. 아니지. 오빠처럼 단순한, 보고 들어도 벙어리가 되고 싶었어…"채리누나가 주방에서 나온다. 채리누나는 이제 배가 부르다. 임신복을 입었는데도 배가 불룩하다. 얼굴에는 기미가 잔뜩 끼었다.

"예리야, 너 왜 이러니? 초저녁부터 취해선. 깡태도 이젠 널 쓸 수가 없대. 자르겠다더라. 너 정말 왜 이래?"

채리누나가 짜증을 낸다.

"자르겠다면 잘라. 추석 쇠면 나오래도 관두겠어"

"얘기를 해봐 무슨 이유야. 이유가 있을 게 아냐! 밥도 안먹고, 너 정말죽으려 환장했니?"

"언니, 마두오빠 잠시 빌려줘. 한곡 추고 보낼테니. 할 말이 있어"순옥이가 내 손을 나꿔챈다. 비틀거리며 의자에서 일어선다. 나는 채리누나를 본다.

"제 몸도 못가누며, 마두는 왜 끌어들여. 다리도 불편한데. 마두야, 가지마"

"언니, 왜 그렇게 빡빡해? 나 정신 말짱해. 봐요. 걸음 똑바로 걷잖아"순옥이가 무작정 내 손을 당긴다. 홀을 나선다. 나는 순옥에게 끌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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