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KGB와 나 전부의장 보브코프 회고록

1951년 7월 어느 맑은 날 아침.나는 평시보다 훨씬 늦게 직장에 도착했다. 현관에 들어서자 마자 곧 복도에 직원들이 웅성거리며 모여 낭패스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 네명이 한조가되어 일하는 우리 사무실에 들어가자 책상 너머에 앉아 있던 동료가 "자네들었는가? 아바꾸모프가 체포됐어"라고 말했다.

나는 반사적으로 "설마!"라고 뱉었다. "이건 결코 그럴수 없는 일이야. 말장난은 그만 두게. 무슨 일이 있었어?". 그는 "어느 누구도 정확한 것은 모른다네. 여러가지 소문만 무성할 뿐이지. '레닌그라드 사건'에서 중대한 위법 행위가 발각됐다나. 그 왜 유럽 반파시스트 위원회의 간부와 의사들 사건있잖아"라고 말했다.

나는 그의 말을 다 듣지도 않고 소문이 얼마나 신빙성 있는 것인지 알아보기 위해 우리 국장에게 들렀다. 이번에는 그가 한숨을 쉬면서 "소문, 소문이야…. 우리는 영원히 소문을 먹고 살지. 저녁에 당 중앙위원회의 결정이 전달되면 그때야 모든 게 밝혀지겠지"라고 했다.

나는 이 결정이 십중팔구 탄압의 성격을 띠고 있음을 거의 의심치 않았다.실제로 무슨일이 있었을까? 중앙위원회의 지령서에는 첩보요원들이 일을 잘못하고 경계를 산만히 하여 테러 집단을 색출하지 못하고 있다는 내용이 있었다. 중앙위원회의 지시를 충실히 이행했을뿐 아니라, 탄압을 가혹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아바꾸모프가 오히려 여기에 걸려들다니.우리는 중앙위원회의 이 결정이 어떻게 나오게 되었는가도 알게 됐다.특별 주요업무 담당 상급 취조관인 류민이 스탈린에게 아바꾸모프가 반체제 혐의로 체포된 의사에 대한 수사를 저지했다고 보고한 것이다. 의사들중한명인 에찐게르는 우리나라의 최대 규모 의사집단이 의식적으로 당과 정부지도자들을 테러하려는 조짐이 있다고 실토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결국 아바꾸모프가 정부지도자들의 테러를 방조한 것으로 되고 만 것이다.우리는 모두 말없이 앉아 침통해 했다. 류민을 잘 아는 그의 동료들은 그를 지극히 평범하고 출세지향주의자이며 어떤 비겁한 행위도 저지를 수 있는인간이라고 말했다. 그런 인간을 어떻게 믿는단 말인가. 게다가 류민을 차관으로 임명하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이날부터 정직하고 양심적인 첩보요원들에 대한 공개적인 테러가 시작됐다고 말하는 것은 과장이 아니다. 우리는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는지도 모를 직장으로 매일 출근했다. 거의 매일 국장과 차장, 부장등이 체포됐다는 소식이들려왔다. 각계 각층의 지도자들이 차례차례로 감옥의 철창으로 보내졌다.대부분의 요원들은 '다모클레스의 칼'아래 있었고 그 칼을 쥐고 있는 사람들은 류민의 지휘하에 있는 출세주의자와 수단을 가리지 않는 수완가들이었다.

당시 일을 마치고 나가면서 직원들은 농담삼아 "만약 내가 돌아오지 않으면 나를 공산주의자로 여기게나"라고 말했다. 이는 음침한 유머였지만 당시상황을 정확하게 표현한 것이었다.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는 것은 끔찍한 일이었다.새 장관으로 당 중앙위원회 당 기관부 책임자로 있던 S·D·이그나찌예프가 임명됐다. 첫날부터 이그나찌예프는 국가안전기구의 직원들을 불신하는태도를 분명히 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기 힘이 닿는 한 탄압 정책에 맞서나갔다.

분명 이그나찌예프는 테러리즘과의 정쟁에 대한 중앙위원회의 결정이 결코수행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상부의 지시를 따르면서 자신의십자가를 져야 했다. 그는 나라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고통스럽게 견뎌냈으나 출구를 찾지 못했다.

이그나찌예프와 다른 국가안전기구 요원들의 비극은 신화적인 테러리스트들을 조속히 적발해야 했고 테러분자들의 색출을 제안한 사람이 바로 류민이었다. 류민은 스탈린의 비호와 지지를 받으면서 전권을 휘둘렀고 이그나찌예프나 다른 요원들은 이를 저지할 수가 없었다.

결국 이그나찌예프도 이 '탄압의 폭풍'을 견뎌내지 못했다. 그가 체포된후 인사차관 자리에 A·A·예삐쉐프가 임명됐다.

나는 당위원회를 선출한 그 당대회를 잘 기억하고 있다. 이미 당위원회 위원들의 후보명단은 확정됐고 투표가 막 시작될 즈음에 예삐쉐프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대의원들이 류민차관과 같은 공적있는 사람을 당위원회에 선출하지 않은 것을 중대한 실수를 범하는 것이라 했다. 물론 '실수'는그 자리에서 수정됐고 류민은 위원회에 발탁, 선출됐다. 그러한 상황이 우리의 실정이었다. 뻔뻔스럽고 파렴치한 출세주의자가 KGB 전체를 장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얼마후 일부 집단이 스탈린 암살을 기도하고 있다는 첩보가 국가보안부로넘어왔다. 보고서에는 음모의 동기와 활동계획이 적혀 있었다. 이를 확인하는 임무가 나에게 떨어졌다. 나는 보고자와 면담했다.

나는 그에게 전체 스토리를 다시 진술해 줄 것을 제안했다. 그는 몹시 불안해 하면서 우물쭈물했다. 새로작성된 서류에는 원래의 것과 모순되는 점들이 들어있었다. 테러에 대한 억지였다.

나의 지적으로 요원은 긴장하면서 자신의 보고서를 돌려줄 것을 간청했다.그러나 나는 "이것은 스탈린동지를 암살에 대한 보고서요!"라며 단호하게 거절했다.

갑자기 그가 붉은 색과 푸른색의 연필을 요구하더니 자신이 보고서를 한번더 검토하겠다고 했다. 한참동안 보고서에다 뭔가 밑줄을 그었다. 그리고 나에게 넘겨주면서 "푸른색으로 밑줄 그은 것은 틀린 부분이고 붉은 색은 옳은것"이라고 말했다.

여러장의 보고서중 첩보를 전해준 친구 세명과 어디서 만났는가 하는 점과그들이 발라쉬하 카페에서 저녁을 어떻게 보냈는가 하는 부분은 진실이었다.그것은 단 네줄에 불과했다.

이것으로 스탈린에 대한 음모는 순전히 허구임이 드러난 것이다.여기서 우리의 대화는 끝났고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상의하기 위해 상부로 향했다. 그를 허위 증거제시죄로 고발해야 할지 아니면 방면해야 할지 결정해야 했던 것이다. 나는 원로공산주의자이고 노련한 첩보요원이었던 A·P·브이조프 국장에게 갔다. 그는" 이 보고서로 자네는 복잡한 상황에 빠져들고 말았네. 허위증거 제시건으로 고발해서는 안돼. 그 사람은 다시 테러를묵과했다는 죄목으로 우리를 고발할 거야. 만일 자네가 그를 풀어준다 해도그는 두번째에도 똑같은 보고서를 쓸거야. 그러면 자네는 어려운 지경에 처하게 될거야. 그를 설득해"

나 자신이 어떤 스토리에 빠져들지 잘 알고 있었다. 당시 상황에서 진실은없었다. 나는 그와 협상했다. 그리고 그를 풀어주었다.

다행스럽게도 그는 두번다시 이같은 보고서를 올리지 않았고 우리를 고발하지도 않았다. 처음의 보고서는 흐지부지해졌다.

나에게 고통스럽고 힘든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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