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민족의 또다른 고향 연변땅.핍박과 인고의 아픈 세월을 딛고 장백산맥 너머에 한(恨)어린 타향 속의 고향을 일궈낸 연변 조선족 마을의 하얀 회칠을 한 초가집을 보면 반세기 넘게 조선의 뿌리를 지키고 살아온 그 하얀마음이 가슴 저리도록 반갑다.
광복 50년 보다도 8년이나 더 긴 58년의 긴 세월을 이국 북간도 땅 연변에서 조선민족의 고고한고집과 뚝심을 지키면서 경상도 사람들만 모여 살아 온 '신툰(新村) 경상도 마을'이 한·중 교류3년만에 처음 알려지게 됐다.
용정에서 백두산 가는 길목의 산오름길에서 10여리 산골로 꺾어 들어선 안도현 도안골.안도현 중국 사람들 사이에는 속칭 새마을(新村)로 불리는 신툰 마을 어귀에 들어서자 이 마을이경상도 사람들만 집단으로 모여 사는 조선족 세거지임을 금새 알 수 있었다.
골목길에서 만난 검정모자를 쓴 촌로에게 촌장(村長)댁을 묻자 귀에 익은 투박한 사투리가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안씨 말인교 집에 있을끼라"
올해 일흔둘이란 이상준노인을 따라 마을 안 막다른 골목집인 촌장댁에 들어섰다.나이 많은 원로인 줄 알았던 촌장 안영춘(安永春)씨는 44세. 신촌에서 태어난 3세다.79세가 마을의 최고령자지만 일을 하려다보니 40대가 촌장으로 마을일을 맡았다고 했다.할아버지 때인 1938년 일제 동척주식회사의 북간도이민 꾐에 속아 일가 모두가 밀양, 경주, 합천쪽 이민 신청자들과 함께 대구역에서 밤기차를 타고 서울 원산 함흥 청진 도문을 거쳐 5일간의긴 여행을 떠난 것이 유민의 출발이었다.
'만주에 가면 물에는 물고기가 씨글씨글하고 산에는 짐승들이 씨글씨글하다. 조이삭은 허리띠만큼 길고, 감자는 물동이 만큼 크고 옥수수 이삭은 팔뚝사리만 하고 콩대는 지팡이를 만들어 짚고다닌다…'
(만주 북간도)동척주식회사 이민모집 선전은 처음부터 속임수였지만 일제의 탄압 속에 먹을 것입을 것 없이 허위허위 살아가던 소작농들에게는 그들의 거창한 선전이 복음과도 같았다고 했다.눈이 펑펑 내리는 겨울, 도문역에서 기차를 내려 출신도별로 뿔뿔이 흩어졌다. 경상도 출신 3백여명만 백두산 가는 안도현 들을 따라 수십여리를 걸어 지금의 신촌 땅에 왔다.
그러나 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 한집에 40마지기의 땅과 소 한마리, 집 한채씩 준다던 무지개꿈 대신 다 무너져가는 토성(土城).
사방 둘러봐도 허허벌판엔 하얀 눈 뿐이었다.
겨우내 인근 중국인들 마을에 더부살이를 시킨 뒤 봄이 되면서 토성 안에다 65호의 집을 지으라고 했다.
울타리를 만들고 다시 사방 2·5m가 넘는 담을 쌓은 뒤 철문을 달고 일본인이 지켜섰다. 주변에는 호도 팠다.
공산당비적들을 막아준다는 명목이었지만 조선 이민들을 속여 끌고와 만주 전역에 거점을 만드는데 이용했던 것이다.
전쟁 막바지엔 북간도에까지 와서도 공물로 바쳐야 했고 수시로 비행장으로 끌고가 활주로 공사등 강제노동도 시켰다.
그런 고난 중에도 마을 학교도 짓고 아이들에겐 집에서 반드시 경상도 말을 쓰도록 했다. 촌장이아직 사투리를 쓰는 것도 그런 교육 덕분이었다.
그 긴 인고의 세월이 8·15해방과 함께 끝나면서 3백여 주민중 이리저리 출향하고 지금은 70여호만 남았다.
그러나 아직도 한채에 3천원(약 30만원)하는 집들도 같은 조선족이 살러 들어오면 그 값에 팔지만 중국인이 사려 들면 8천원(80만원)을 주려고 해도 끝내 팔지 않고 경상도 사람만 살겠다는 고집을 부리고 있다.
"두배 더 줘도 안팔끼라요" 촌장의 사투리가 단호하다.
가난하고 힘든 드난살이 같은 삶속에서도 놋다리 밟기 같은 민속놀이는 아직도 보존, 조선족 자치주 성립기념행사 때 조선족들에게 선보여 주곤한다.
마을의 꽃상여도 문혁때 파괴됐지만 다시 만들어 뿌리를 지키고 있다.
58년을 한마을에서 경상도 기질을 지키며 살아온 신툰마을 사람들의 꿈은 잘 살게된 모국 한국의고향에서 조그만 고추장 공장 하나쯤 세워주면 경상도 음식 솜씨로 궁핍해져가는 마을 살림을 살려낼 수 있다는 소박한 바람 하나 뿐이다.
아마도 경상도 고향에서 고추장 공장 하나 세우는 지원만으로도 중국땅의 경상도 마을은 더 긴역사를 간직하며 대견스런 고집을 지켜나갈 것 같다.
광복50주년을 보내는 신툰마을의 새해에는 밝은 소식 좋은 꿈이 이뤄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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