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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이 바로 선림원지(禪林院址)라는 절터였다. 민학회의 최교수라는 별명을 가진 간사가 가리키는 황량한 산자락으로 시선을 주고 있던 일행들의 표정에는 실망의 빛이 뚜렷했다.선림원(禪林院)은 서기 804년 순응(順應)법사가 창건한 사찰입니다. 순응법사는 당나라의 유학승으로 처음에는 가야산에서 초당을 짓고 수도하고 있었습니다만 나이 열세살에 신라 40대왕으로즉위했던 애장왕(哀莊王)을 아시죠? 그런데 그 왕비의 등창을 고쳐주고 받은 하사금으로 해인사(海印寺)를 세운 분이 바로 순응법사입니다. 해인사는 애장왕 2년, 그러니까 서기 802년에 세운사찰입니다만 해인사를 세운 2년후에 순응은 이곳에 다시 선림원을 세우고 수도처로 삼게 됩니다. 순응이 선림원을 세우면서 범종 하나를 주조했는데 해방 이후에서야 발견되었지요. 그런에 그범종을 이런 폐허에 방치할 수는 없어서 오대산 월정사(月精寺)에다 옮겨 놓았습니다만 육이오때나쁜 놈들이 월정사에다 불을 지르게 되면서 범종도 함께 녹아버렸죠. 아깝습니다. 그 범종에는선림원의 조성내력이 적힌 명문(銘文)이 있었지요. 그때 간사의 말을 가로채고 듣는 사람이 있었다. 누가 월정사에 불을 질렀오 임진왜란때입니까? 감사의 표정이 한순간 곤욕스러워졌다. 그는사지(寺址)의 공허한 폐허를 등뒤로 두고 이제 막 단풍이 들고 있는 맞은편 산자락의 수림들을휘둘러 본 뒤 입을 열었다. 우리나라의 사찰치고 임진왜란때 폐해를 입지 않은 사찰이 드물지요.그런데 선림원이 피폐한 원인은 조금 다릅니다. 산사태로 무너진 것이여서 그 범종 역시 땅에 묻혀있던 걸 발굴한 것이예요. 다시 누가 물었다. 월정사에 불을 지른 건 인민군들이 었나요? 글쎄요 인민군들이 불을 질렀다면 그나마 위안이 되겠오? 일행들 몇몇은 쿡쿡 웃기도 했다. 육이오당시 월정사는 오대산 전투에 참가했던 우리 국군들이 주둔해 있었더랍니다. 묻건대 그 국군들이퇴각하면서 불을 지른거예요. 한두 사람이 끌끌 혀를 차고 서있을 뿐, 대다수의 일행들은 벌써 대여섯 발짝 산자락 위쪽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는 간사의 뒤를 호들갑스럽게 따르고 있었다.미천지류가 흐르고 있는 계곡을 남쪽으로 바라보며 조성되었던 절터는 간사의 지적대로 폐허 그대로였다. 그러나 이렇다할 느낌도 없는 삼층석탑과 비석은 간데 없고 돌거북만 남아있는 기단하나 그리고 석등(石燈) 하나가 폐사지(廢寺址)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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