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목요칼럼(세풍)-감나무의 까치밥(이정훈)

아파트에 몇그루 심어진 감나무, 아직도 감이 한두개 대롱대롱 달려 있는걸 본다. 따야할때가 지나 홍시가 되어 그냥 바닥에 떨어진것도 있고, 동네아이들이 나무를 흔들어 우박처럼 쏟아진것도있다. 그러나 여러차례 서리가 내린 지금까지 높은 가지에 빨갛게 남아 있는걸 보면 어지간히 끈질기다고 여기다가도 저게 정상적인 자연의 현상이 아닐까 생각하게된다. 지난 늦가을 감을 한창딸무렵 감값이 좋지않고 일손이 모자라자 어느 감곳에서는 감을 그냥 따가시라는 기사까지 난 기억이 있다.

'여분'은 남기는 전통

소득1만달러 시대를 들어서고 있어 그런지, 그리고 쓰레기도 돈을 주고 버려야하는 부담때문인지우리에게 주워담는 습성보다는 쉽게 버리는 버릇이 어느새 커가고 있음을 보고 자주 놀란다. 옛날 같으면 어림없는 일이다. 감이든 뭣이든 살아가는데 있어야 하는 먹을거리라면 소중히 여기고갈무리할 줄 알았으며 남의집 아이라도 그걸 함부로 버리는 일이 있으면 호되게 꾸짖는 애정이있었다.

오랜 농경시대를 살아온 전통 탓이겠지만 지금도 우리에게는 어느 구석엔가 이런 의식은 남아 있다. 별미라도 있으면 이웃집과 나누어 먹고 자기가족들만 먹더라도 언제나 다른사람에게 줄때를생각하며 여분을 두는 훌륭한 습성이 있다. 감을 따더라도 하나도 남기지 않고 깡그리 따 버리는게 아니라 '까치밥'이라하여 한두개는 높은가지에 달아두었다. 그것은 종자를 확보해 두지않으면다음해 농사를 기약할 수 없다는 생활체험에서 저절로 우려낸 것이겠지만 그보다 더 깊은 밑바닥에는 우주의 변화는 언제나 돌고돈다는 동양적 순환의 믿음에서 온듯하다.

東洋的 순환의 믿음

동양의 고전인 '詩經'에서도 程子의 이런말이 있다. "周易의 剝卦는 모든 陽이 消剝하여 이미 다하고 홀로 上九 한 爻만이 아직도 남아있으니 이는 마치 큰 과일이 먹힘을 당하지 않아서 장차다시 생겨날 이치가 있는 것과 같다. 上九 또한 변하면 純陰이 된다. 그러나 陽은 다하는 이치가없으니 위가 변하면 아래에서 생겨나서 한순간도 쉴수가 없는 것이다"(卷七'下泉')96년 새해다. 두전직 대통령의 구속에 따른 여파가 계속되고, 오는 4월 총선거가 석달남짓 앞으로다가와 긴장을 더한다. 그리고 北韓이 지난여름 심한 수해로 심각한 식량난을 겪고있어 국제사회의 지원문제가 논의되고 있다. 우리의 안팎으로 격랑이 일고있는 것이다. 이런 시국을 어떻게 슬기롭게 헤쳐갈지 관심이 모아진다. 여권은 새해정국운영의 기조로 지난해와 같은 '과거淸算'을 지양하고 근로자의 노동조건개선등 '미래指向'으로 국민대통합을 기할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새로취임한 국무총리는 과거청산을 위한 非理수사범위를 되도록 한정할 뜻을 비쳤고, 법적용을 엄정하게 하더라도 몇몇사람이 아닌 많은 국민들을 대상으로 과거의 비리를 캔다면 그 가운데는 비리의 둔감을 가져와 소기의 뜻을 이루지 못하게 될수도 있다는 점을 넌지시 들기도 했다.국민대통합 지향해야

감나무의 감을 모두 따버릴 것인지, 아니면 '까치밥'은 남길 것인지의 선택은 오로지 따는 사람에달려있고, 어느선택이 옳았는지 그 평가는 훗날 동네사람들이 내릴것이다.〈本社理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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