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우연한 여행(91)

제1장 갓길 산책

이제 보니 선생님 말씀 잘 하시네요?

그런가요

그럼요. 곁에 있는 나까지 가슴 뭉클한데요

그러나 이번 대답은 계획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더욱 뭉클하군요. 질투나구요. 지원이 있는 면전에서 제게 찬물을 끼얹으셔도 되는지 모르겠어요?

무슨 뜻이죠

여자들만의 속성이 있지요. 자기와는 상관없는 일이라 하더라도 이런 경우 짜릿한 질투를 느낀답니다. 그래서 훼방을 놓거나 엉뚱한 분풀이도 하게 되지요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동안 지원은 창 밖을 내다보며 앉아 있었다. 그 카페의 유리벽은길거리 쪽으로 환하게 개방되어 있었다. 그러나 안쪽에선 바깥거리의 행인들이 보여주는 자유분방함을 마음껏 관찰할 수 있었지만 길거리의 사람들은 카페 안쪽이 보이지 않도록 선팅이 된 유리벽이었다. 그녀는 카페 안쪽에 있었지만 심정적으로는 유리벽 바깥쪽에 서 있는 사람과 다를바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유리벽을 통해 바라보이는 길거리는 마침 버스정류장이었다. 퇴근무렵의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고 있었다. 옷차림이 한결 간편해진 사람들의 모습에서 봄을예견할 수 있었다. 길건너 편의 세탁소를 바라보며 그녀는 속으로 뇌었다. 아, 봄이 바로 턱 밑으로 다가서고 있군.

문득 오태석이가 보고 싶었다. 어째서 강석주와의 관계가 심상치 않아질 것이란 예측이 스멀스멀가슴 속으로 파고들 때마다 그가 보고싶어지는 것일까. 이미 이승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 아니란것을 익히 알고 있는데도 그가 보고싶다는 가슴 속으로부터의 호소는 도대체 어디서부터 비롯된모순인가. 그리고 지금 자신은 도대체 무엇을 저주하고 있는 것일까. 원고작성을 핑계로 닷새 동안이나 집에서 칩거하면서 자신은 무엇을 생각해 왔을까. 누가 그렇게 묻기라도 한다면 그녀는대답할 말이 없었다. 왜냐하면 아무런 상념에도 잠겨 있었던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무것도생각했던 일이 없었다. 강석주를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그녀의 머릿속은 박처럼 텅텅 비어있다는것만 의식했을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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