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칼럼1

"自然은 自然스럽지 않다"

바람이 쌀쌀한 어느날 정원에서 아직도 녹지않고 쌓인 눈을 뚫고 새싹을 내밀고 있는 크로커스의꽃봉오리를 발견했을 때 우리는 기다렸던 봄이 옴을 새삼 깨닫는다. 겨우내 말라붙어 죽은 것만같았던 앙상한 개나리의 검정빛 가지끝에 어느덧 솟아난 노란 꽃봉오를 처음 보았을 때 우리는추운 겨울이 갔음을 발견한다.

모든 생명의 뿌리

어떻게 눈속에서 저렇게도 아름답고 생생한 생명의 싹이 솟아 날수 있는가.

어떻게 죽은 나뭇가지에서 노란 생명의 꽃봉오리가 피어날 수 있겠는가. 자연의 영원한 이치에따라 계절이 바뀌고, 싹이 돋고 꽃이 핀다. 아득한 인류 역사의 시초부터 알고 있는것이지만 이러한 자연의 원리는 여전히 놀랍고 신비로우며, 경외스럽고 아름답다.

그림같이 알록달록한 색깔로 산과 들, 마을과 도시의 공원을 얼마동안 화려하게 장식했던 개나리꽃, 복숭아꽃, 벚꽃, 사과나무꽃 등도 져버린지 오랜 6월 중순 즈음에 죽은 듯만 했던 산은 이미짙은 녹음으로 우거지고 새 야채로 덮인 밭과 모내기가 끝난 논은 온통 푸르러 온 세상이 다시금풍요롭고 신선하다. 첨단기술이 지배하는 오늘날에도 자연은 여전히 신기하고 감탄스럽다. 자연은모든 생명의 뿌리이며 생명은 신비적 경험의 원천이었다. 시인들이 자연을 노래로 찬미하고 예술가들이 그들의 작품속에 재현하고자 했던 것은 우연이 아니며, 자연이 철학자들의 탐구와 경외심의 대상이었던 것은 자연스럽다. 그들에게 자연은 자연스럽지 않았다.

인간 욕망충족 자료로

그러나 서양의 근대적 과학 사고와 기술이 우리를 지배하게 되면서 신선함과 놀라움, 신비와 아름다움, 찬미와 경외심, 감동과 기쁨의 무한한 원천이었던 자연이 이제는 작동하는 거대한 기계로서 메마른 존재로서 수학적 서술과 기술적 개발로 이용할 수 있는 인간의 욕망충족을 위한 단순한 자료로 전락하게 되었다. 자연은 자연의 법칙에 따라 자연스럽게 돌아갈 뿐이다. 경제적 가치만을 추구하는데 열중한 현대문명은 자연이 더 이상 자연스럽지 않다는 사실을 잊고, 자연에서느꼈던 미적 종교적 감동의 기능을 상실하고 말았다.

물론 주말이면 수많은 이들이 생활하기에는 편리하지만 삭막한 공업단지나 고층 아파트 숲으로숨막히는 도시를 빠져 나와 자연을 찾아 산으로 혹은 강변으로 간다. 그리고 그들은 자연이 좋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이 등산하는 이유는 건강을 위해서이지 자연을 찬미해서가 아니며 그들이강변을 찾는 까닭은 휴식을 위해서이지 자연을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에게 자연은 재산목록이나 별장을 위한 도구이다. 오늘날 첨단 생명과학은 생명의 신비를 벗기고 기계로서 설명한다.자연은 이제 감동의 원천도 아니며 경외심을 자극하지도 못한다.

그 자체가 보호의 대상

그러나 자연은 역시 신기하고 경외롭다. 그냥 자연스럽지 않다는 말이다. 때가 오면 죽은 땅에서새 싹이 솟고, 마른 나뭇가지에서 새 꽃봉오리를 맺는 자연은 보면 볼수록 놀랍고 아름다우며 생각하면 할수록 신비롭고 경외롭다. 설사 이러한 현상이 자연과학이 주장하는대로 기계적으로 설명되고 그것이 보편적인 따라서 그만큼 평범한 기계적 원리에 의해 설명되더라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자연은 상품의 단순한 자료가 아니라 그 자체가 가치이며 약탈이 아니라 보호의 대상이다.그동안 눈앞의 물질적 풍요에만 관심을 쏟아왔던 기술적 조작력에 마비된 현대문명은 자연에 담긴 순환적 생성의 신비를 느끼지도 못하고 현대인 은 자연앞에서도 아무런 감동도 경험하지 못할만큼 무감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녹음이 짙은 산과 푸른 들을 바라보면 볼수록 나는 한없이 신비롭고 아름다운 감동으로 가슴이 벅차옴을 새삼 느낀다.

〈포항공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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