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공비에 피살된 정우교할머니 집

"고향에서 참변당하다니…"

강원도 산골 얘기만 나오면 그렇게 즐거워하시더니…지난 9일 무장공비의 손에 무참히 살해된 정우교 할머니(69)가 살던 대구시 중구 대봉2동 590 이웃 주민들은 할머니의 죽음이 믿기지 않는 듯 10일 아침 일찍부터 집앞 골목길에 모여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머니의 죽음을 접하고 급히 떠난 아들 강성우씨(35)가 살던 집에는 아직 할머니의 체취가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꼼꼼하게 정리해 다발로 묶어놓은 신문뭉치, 깨끗이 씻어말린 빈병과 우유곽.모든 것이 평소 유난스레 깔끔하던 할머니의 손길로 이뤄진 것들이다.

올해 할머니는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의 고향산골을 제법 오래 떠나 있었다. 예년 같으면 온여름 산골을 누비며 송이버섯과 산나물을 뜯다가 늦가을.겨울을나기위해 아들집을 찾을때 들고오곤 했다.

하지만 올해는 몸이 예전같지 않은 탓에 설을 쇤 뒤 줄곳 아들집에서 지냈다.아들네 형편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다. 서비스업을 하는 아들의 벌이가 일정치 않아 며느리 임은숙씨(29)가 미용실에 나가고 있었다. 때문에 할머니가 손녀수진(9.대구초등학교 3년), 손자 동훈(4)이를 돌봐주지 않으면 며느리가 일을 할수 없다. 할머니는 온여름 고향 가고싶은 마음을 꾹 누르며 참다가 한더위가지나자 기어코 고향으로 돌아가셨다.

손주들 재롱과 더불어 아들, 며느리와 함께 사는 것도 즐거웠지만 송이라도 따서 살림에 보태고 꿈에라도 잡힐듯한 고향 산천이 그리워 못견뎠기 때문이다.

정할머니는 손자 동훈이 못지 않게 손녀 수진이도 끔찍이 귀여워했다. 학급 부실장을 맡고 있는 손녀는 그림 그리기와 노래에도 소질이 있어 교내학술경연대회에서 상을 도맡아 타왔기 때문이다.

재작년 손녀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날 매일신문 주간매일의 행운의 주인공란에 며느리와 손녀의 사진이 실려 뷔페 초대권을 타기도 했다.

그러나 수진이가 입학을 하니까 신문사에서도 축하해 주는구나 하고 기뻐하시던 할머니는 이제 손주들의 가슴아픈 기억속으로 남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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