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정부가 정한 문학의 해다. 정부는 정초부터 문학 부문을 지원하겠다는 여러가지 정책적제언들을 내놓았고 문학의 해 조직위원회 라는 관변단체까지 만들었다. 이런 관변측의 캠페인에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없는 것보다는 나으리라는 예상을 누구나 했었다. 그러나 한 해가 저물어가는 이즈음 정부는 문학 진흥에 도움이 못 되는데 그치지 않고,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문학이 만드는 우리 사회의 생기발랄한 기풍을 고사시키고 있다.
이 우울한 관측은 최근 외설 파문이 일어났던 장정일씨의 사법처리 결정 때문이다. 그동안 이 외설 파문은 간행물윤리위원회의 제재결정이 내려지고 문체부에 의해 판매금지조치가 취해짐으로써일단락된 듯했다. 그러나 최근 검찰은 작가의 책을 간행한 출판사 간부를 구속하고 파리에 체류중인 작가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할 방침을 발표하고야 말았다.
창작해치는 검열칼날
필자는 여러번 장정일씨의 내게 거짓말을 해봐 가 당국이 문제삼는 음란문서 가 아니라 진지한소설작품임을 피력했다. 그동안 외설을 통해 대중소비사회에 대한 문명비판을 시도해온 작가 장정일씨는 이 소설에서 극단에 이르는 자기 모멸과 말세적 현실에 대한 절망을 표현하고 있다. 잔혹과 외설을 통해 존재하는 이 세계의 절망적이고 묵시록적인 비전을 표현하고 역설적으로 삶의가치와 새로운 질서를 향한 희망을 앙양시킨다는 것. 이것은 아토닌 아르토의 잔혹극으로부터 시작되어 최근의 하이네 뮐러에 이르는 현대문학의 중요한 사조를 대변한다. 장정일의 소설이 이러한 사상의 가능성을 얼마나 성공적으로 형상화했는가는 별개의 문제일 것이다. 우리는 사회를 음란물로부터 보호하겠다는 당국의 의지를 존중한다. 그러나 당국은 작품 하나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총체적인 문화상황을 검토해야 한다. 사법당국이 대국적인 판단을 잃고 윤리와 도덕을 내세운,흥분된 소수의 세론(勢論)에 휘둘려서는 안된다. 한국의 독자들은 이미 어머니와의 근친상간과 살부(殺父), 강간 등의 참혹하고 불쾌한 모티브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하이네 뮐러의 연극 햄릿머신을 관람했다. 몇 배 더 음란한 햄릿머신 은 독일의 고명한 대가가 썼으므로 괜찮고, 내게 거짓말을 해봐 는 학벌도 없고 연고도 없는 한국 소설가가 썼으므로 반드시 감옥에 처넣겠다는 발상에 누가 동의할 수 있겠는가.
음란물과 작품의 차이
이 문제는 당국만이 아니라 아직도 작가의 처벌을 주장하는 시민단체들과도 관련된다. 우리는 그동안 이런 시민단체들의 건전한 시민운동은 우리 사회의 부정부패를 규제하는데 지대한 역할을했음을 알고있다. 이번 장정일씨의 경우에도 이분들의 문제 제기에 필자는 많은 공감을 느끼고있다. 그러나 필자는 윤리의 강조는 어디까지나 현실적인 행복을 목표로 삼아야지 윤리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원칙을 조심스럽게 환기시키고 싶다. 필자 역시 소설가이기 이전에부모로서 자식이 도색적인 음란물에 오염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동시에 필자는 내 자식이 윤리의 매카시즘이 지배하는 경직된 사회에서, 늘 주눅이 든 채 자신의 자율적인 의견과 정서를 표현하기를 주저하는 위선적인 인간이 되어서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이 두가지 가능성은 서로 상쇄적인 것으로 존재하며 우리가 융통성과 여유를 가지고 판단해야 할 문제이다.
다양한 시각의 필요성
올해는 문학의 해라는 빛바랜 구호를 다시 간곡히 부연한다. 문학은 자주 상식을 벗어나 사회를불쾌하게 만든다. 이것은 문학이 상식의 괄호를 벗어나 늘 그 바깥에서 날카롭고 새로운 극단의비전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설사 어떤 문학작품이 불쾌하고 못마땅할지라도 그것은 우리 사회의장구한 미래와 균형감각을 위해 필요한 것일 수가 있다. 적어도 올해만은 검열에 의해 창작이 말라죽지 않도록 사회의 관용을 호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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