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중소 섬유업체 사장의 하소연-"연말이 두려워요"

연쇄부도가 나고 있는 대구지역 섬유업계 사장들에겐 불황보다 더 괴로운게 있다. 곳곳에서 내미는 '손'들이 그것. 어려운 사정 뻔히 알면서도 '협조'를 요구해 속을 뒤집어 놓는다.대구에서 조그만 섬유업체를 경영하는 30대 중반의 김상원씨(가명). "사정(司正)이요? 말짱 헛일입니다. 위엔 얼마나 깨끗해졌는지 모르지만 밑바닥은 더 탁해졌어요" 연말이 닥쳐오자 김사장은뒷머리부터 무거워진다.

지난 추석무렵, 직원 50여명에게 기본급의 10%%밖에 안되는 쥐꼬리만한 추석보너스를 줬다. 조금만 더 참자며 직원들을 다독거렸지만 미안한 마음에 쥐구멍을 찾고 싶었다.

사정이 이런데도 김사장은 이곳 저곳에 촌지와 구두티켓을 전달하고 추석치레를 했다. 공장을 돌리는데 직접 관련된 ○○공사와 △△사업소에 몇십만원씩 인사를 했다. 구두티켓도 몇장씩 돌렸다. 추석에 이렇게 들어간 돈이1백만원이 넘었다.

부도난 업체를 떠 맡은 이사장은 전기료와 물값을 빚지고 있다. 때문에 해당기관엔 각별히 신경쓰고 있다. "끊겠다"고 을러댈 때마다 직원들을 달랠 수밖에 없다.

관할 파출소는 그래도 사정(司正) 탓인지 요즘은 직접 돈을 달라는 말은 않는다. 그러나 파출소운영에 외면만은 할수는 없다. 경찰서도 평소 챙기는 곳중의 하나. '좋은게 좋다'는 철학이 몸에밴 그이지만 불경기인 요즘은 짜증스런 심정이다.

얼마전 2천만원짜리 어음(3개월)을 갖고 상호신용금고에 간 중소업체 최사장은 15.9%%를 뗀 현금을 받아쥐고 월30만원짜리 적금까지 들어야 했다. 고질적인 '꺾기'였다. 부도난 회사가 쓰던 전화번호를 물려받으려고 전화국을찾았을때 담당직원이 "공중전화 카드를 사라"고 해 30만원을 줬다.

"너무 시달려 소방서는 미처 챙기지를 못해 직접 서장을 찾아가 '회사사정이 좋아질 때까지 참아달라'고 부탁했더니 들어주시더군요" 최사장은 자기는 그래도 덜 당하는 편이라고 자위했다.장시간 얘기를 끝낸 최사장은 작업장에 가려고 일어섰다. "윗분들이 떠들어대는 '사정'이 뭔지 잘모르겠어요. 단지 기업인이 공장을 돌리는데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해줬으면 좋겠습니다"〈李大現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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