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역사와 영화사이(18)-에이젠슈체인 '전함 포춈킨'

1991년 소련공산당체제는 막을 내렸다. 1917년 러시아혁명 이래 74년만이었다. 그후 지금까지 러시아는 민주화를 위해 노력해왔다. 그런데 지난 세기말 러시아의 역사도 민주화로 시작되었다. 흔히들 러시아혁명의 효시라는 의미에서 '제1차 러시아혁명'이라고 부르는 1905년의 사건들도 사실은 '민주혁명'에 불과했다. 에이젠슈체인의 '전함 포춈킨'은 그 역사를 기록한 것이다.지난 세기말 러시아에서는 차르체제에 저항하는 혁명적인 사건들이 빈발했다. 그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이 1905년 1월 평화적인 시위대에 발포하여 발생한 '피의 일요일'이었다. 앞장을 선 사람은 혁명가가 아닌 신부였고 당시 민중은 정부에 입헌정치, 인권과 자유의 확립, 세제의 개혁, 러일전쟁의 중지, 법에 의한 노동자의 보호 등을 청원했다. 약 7만명이 시위에 참가하여 4천명 이상이 죽었다.

'피의 일요일'이후 약 한달동안 그때까지 10년간의 파업참가자 총수를 상회하는 40만 노동자가전국에서 항의파업을 일으켰다. 이어 5월에는 여러 도시에서 대규모 집단시위가 벌어졌고 두달간계속된 동맹파업에 6만여명의 노동자들이 참여했다. 파업은 최초의 소비에트(협의회)에 의해 지도되었다. 농민들의 반란도 이어졌고 군대마저 혁명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었다.

6월, 러시아함대의 순양함인 포춈킨에서, 노동자출신인 수병들이 봉기했으나 사살되었다. 항구에서 벌어진 수병의 장례식은 수천명의 군중시위로 변했고 사람들은 '타도 전제정치!' '공화국 만세!'등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시가를 행진했다. 그야말로 민주혁명이었다. 그러나 혁명은 무자비한탄압을 받는다. 무성영화인 '전함 포춈킨'의 마지막 자막은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라는 러시아민중의 혁명구호이다.

영화에서 묘사되지 못한 뒷얘기를 알아보자. 루마니아로 간 배의 승무원들은 외국영사들에게 자신들이 전제주의에 대항하여 일어섰으며 헌법제정회의 소집을 요구한다고 밝히고 항복했다. 이어10월에 철도종사자들이 총파업을 일으켰고 2천5백여개의 대기업체 노동자들을 포함한 2백만명이이에 가세했다. 그들 역시 헌법제정회의 소집을 요구했고 노동자 대표의 소비에트가 여러 도시에서 구성되어 8시간 노동제를 확립했다.

정부는 무력으로 진압하고자 했으나 노동자들은 강력히 저항했다. 결국 정부는 정치언론 및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며 국회를 소집하여 입법권을 부여한다는 선언을 하여 10월 총파업은 중단되었다. 그러자 정부는 소비에트의 대표자들을 모두 체포하여 동맹파업은 폭동으로 이어졌다. 다음 해에도 폭동은 계속되었다. 국회가 소집되었으나 정부에 의해 곧 해산되었고 혁명은 실패로 끝났다.정부는 그후 10년간 혹독한 반동정치를 실시했다.

영화사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에이젠슈체인과 그의 몽타주이론 그리고 그것을 처음으로만든 '전함 포춈킨'을 기억할 것이다. 몽타주 영화이론은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많은 나라의 영화인들에게 중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러시아 현대영화인들에게 그는 철저히 무시되고 있다. 이는 그가 공산당독재에 의한 관제혁명영화의 상징처럼 받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날러시아에서는 누구도 그를 받들기는커녕 기억하지도 않는다. 〈영남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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