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격변의 노동현장 '소리…소리…'(2)-흔들리는 화이트칼라

"정리해고 불안 '언제 잘릴지…'"

시골 상고를 졸업한뒤 곧바로 대구은행에 입사한 이근규씨(38)는 20년째 한직장에 몸담고 있는은행원. 과장 진급을 해 연봉이 4천5백만원인데다 맡고 있는 일이 적성에 맞아 은행에 뼈를 묻을생각이다.

그러나 요즘 그는 노동법이 시행되면 평생직장을 잃을 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생각을 하고 있다."제가 정리해고 대상이 될 것으로 생각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합병등으로 환경이 급변해 인력 대감축이 필요해지면 저라고 정리해고 당하지 말라는 법도 없겠지요"

정리해고에 대한 불안은 이씨 혼자만 느끼는 것이 아니다. 임성훈 노조부위원장(35)은 "제때 승진하지 못한 몇몇 동료들이 명예퇴직제를 도입하지 않느냐고 문의해온다"고 전했다. 정리되느니 스스로 떠나자는 것.

이처럼 은행원들이 흔들리자 대구은행장은 최근 '직원과의 대화'에서 "명예퇴직제나 정리해고제를 도입하지 않겠다"고 못박아 진화에 나섰지만 불안감은 여전히 확산되고 있다 한다.대구은행이 흔들리는 것을 화이트칼라들은 예사롭게 보지 않는다. 보수나 안정성 면에서 그만한직장을 찾기 어렵다고 봐왔기 때문이다. 주택회사에 다니는 윤모씨(35)는 "지역의 몇안되는 흑자기업인 대구은행 직원들이 불안하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느냐" 고 반문했다.

불안한 직장인들은 부업을 꿈꾼다. 젊을 때 돈이라도 벌어둬야 안심할 수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에서다. 뚜렷한 기술이 없는 화이트칼라들이 생각하는 부업거리래야 고작 통닭집 분식집 의류점 등등.

바로 이점에서 정리해고제 도입이 성급했다고 단정짓는 사람들이 많다. 실력을 인정받고 있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회사에 다니는 사람까지 '평생직장 의식'을 잃고 부업을 찾아 나서면 기업 경쟁력은 어디서 찾느냐는 것.

대구대 법대 강성태교수는 "정리해고제 도입은 고용불안의 문제보다 근로자들에게서 평생직장 의식을 뺏는 것" 이라며 " 정리해고제가 악용되고 직원들이 일보다 '줄서기'에 나서면 창의적 기업발전은 기대하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강교수는 "화이트칼라들의 동요는 사회보장이 이뤄지지 않아 생계가 걱정되기 때문"이라며 "복지증진 없이 정리해고제를 입법화하는 것은 성급하다"고 덧붙였다.

화이트칼라들의 동요는 광범위하게 목격된다. 대우기전의 한 관리직 사원은 노조가 싸움에서 이겨주기를 은근히 바라고 있다고 했다. "대신 싸워주니 속이 시원합니다. 함께 파업 대열에 서지못하는 것이 미안할 뿐이죠"

그러나 회사를 적으로만 바라보는 동료들을 못마땅히 여기는 사람들도 없지 않다. "회사없는 노조가 어디 있습니까. 설마 열심히 일하는 사람을 쫓아내지야 않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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