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서거정 시비

서거정(1420-1488).

대구 출신의 걸출한 인물이다. 그럼에도 대구 사람들보다 오히려 외지 사람들에 의해 추앙받고있다. 일찍이 대구 사랑을 주창해온 분인데도 정작 사랑받아야 할 고향 사람들에게는 소홀히 기억되고 있다는 것이 여간 안타까운 일이 아니다.

서거정은 향토 대구의 다른 이름인 달성을 관향으로 하는 달성 서씨의 후예다. 4번에 걸쳐 과거에 합격한 특이한 기록을 가지고 있을뿐 아니라 45년동안 무려 6대의 임금을 섬겼다. 벼슬 중에서도 꽃이라 할수 있는 대제학을 28년 맡고 6조 판서를 두루 역임했으며 대사헌을 2번, 과거 시험관을 23번, 마지막으로 좌찬성이란 고위직까지 오른 인물이다. 시문집인 동문선(東文選)과 인문지리서인 동국여지승람을 편찬했으며 문장력이 뛰어나 중국사신이 "공과 같은 재주는 중국에서찾아도 두 세사람 밖에 없다"고 감탄했을 정도다.

그는 대구를 사랑해 10경(十景)을 지어 산하의 후덕한 인심을 노래했고 중앙관직에 있으면서도늘 대구를 잊지 못해 대구 사랑에 관한 글을 많이 남겼다.

"나의 고향 대구는 경상도 거읍(巨邑)이다. 산천이 수려하고 기상이 당당해 의당 많은 영재를 배출할 것 같은데 어찌하여 한 사람의 재사(才士)도 나오지 않을까. 이같은 현상은 대구의 사람이못나 그렇다기 보다, 특출한 인물이 나와 이끌어주지 않은데 오히려 원인이 큰 것 같다. 내가 급제한 것이 어언 15년, 이제 도하(都夏)가 장원을 했으니 대구로서는 참으로 경사스러운 일이 아닌가"

서울시가 한강변에 서거정의 시비(詩碑)를 세운다고 한다. 그가 서울에 머물때 한강을 유람하며광나루 부근을 예찬한 시를 썼는데 그 시가 빼어나 시비를 세우기로 한 것이다.기념표석 하나 없는 우리로서는 부끄럽기 그지 없는 일이다. 오로지 자신의 영달에만 급급했던소위 출세한 대구 사람들과 너무나 대조적인 서거정의 애향심에 숙연해지기 까지 한다.〈대구시 임업시험장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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