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 동쪽 기슭에 위치한 서출지(書出池). 삼국유사의 '사금갑(射琴匣)'에서 노인이 글을 갖고 나왔다는 전설이 서린 연못이다. 이곳 서출지의 정확한 위치를 놓고 학계의 논란이 20여년째 진행되고 있지만 정작 문화재관리당국에서는 터럭만큼의 관심도 기울이지 않는다.
그러나 서출지 기원이 적힌 삼국유사와 관련 책자, 그리고 인근 지명등 희미한 자취를 더듬어 가다보면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또 서출지에 얽힌 의혹의 궤적을 쫓다보면 한심한 수준을맴돌고 있는 우리나라 문화당국의 단순(?) 과격성에 또 한번 놀라게 된다.
군사정권시절인 63년 발효된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경주시 일대 문화재지정이 일사불란하게 이뤄졌고 64년 7월11일 경주시 남산동 현 통일전 옆 연못(둘레 38m 깊이 1m)이 사적1백38호로 지정됐다. 사적지 지정배경은 이곳이 서출지라는 이유에서였다. 문화재관리국은 구전등을 통해 이곳을서출지로 지정했지만 발굴등 조사가 전무한 것을 물론 서출지에 대한 구체적인 정황증거를 제시하지 못함은 물론이었다.
이 연못에는 1664년(현종5년) 임적(任勣)이란 선비가 지었다는 정자 이요당(二樂堂)이 자리잡고있어 수려한 풍광을 자랑하고있다. 물위로 누마루가 돌출한 팔작지붕의 정자 주변에는 팽나무 고목과 물가를 감싼 배롱나무가 넉넉한 풍경을 연출하고있어 유서깊은 연못 서출지였을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십상이다. 이못은 여름이면 백일홍과 흐드러지게 핀 연꽃으로 못전체가 꽃밭으로변해 연화지(蓮花池) 혹은 연꽂못으로 불린다.
이곳에서 남쪽으로 4백여m 떨어진 지점에는 유명한 남산리 쌍탑이 있고 그앞에는 둘레 2백38m(717척) 깊이1.6m (5척) 규모의 양피못이 있다. 또 이 연못에는 임적의 동생 임면(任勉)이 인조시대에 배반동 능말에 풍류를 읊던 산수당(山水堂) 정자를 후손들이 지난 53년 이곳으로 옮겨놓았다.
향토사가들은 이곳을 서출지의 원위치로 추정하고있다. 추정근거는 삼국유사에서 출발한다. 삼국유사에는 서출지 위치가 남쪽 피촌(避村)으로 되어있다 또 피촌은 고려시대에 양피사촌(壤避寺村)으로 불렸다. 현재 남산리 쌍탑지역은 피리(避里) 또는 피촌(避村)이라 불리고 이못 역시 양피못또는 양기못이라는 기록이 나온다.
71년 발간된 경주시지에도 향토사학가 유석우(柳奭佑)씨는 "서출지를 이요당앞 연못으로 의정(擬定)하는 이도 있으나 구비(口碑)에 의하면 거기서 남쪽 수백m되는 곳에 양기못 또는 양피제라 하는데 거기가 바로 피촌"이라 주장, 서출지위치가 잘못 지정됐음을 지적하고있다.또 경주향토사학가 윤경렬씨도 "60년대 남산리 양로당에서 이곳에서 오래 산 노인들을 통해 일제강점시절 서출지못이름이 바뀌었다는 증언을 듣기도했다"고 밝히고있다.
지난 92년 발간된 경주풍물지리지에도 남산리주민의 증언을 빌려 서출지지점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있다.
게다가 경주시지도를 펼쳐보면 서출지 지점에 대한 의혹은 더욱 증폭된다. 문화당국이 서출지로지정한 이요당정자 연못의 옆 들판은 남산들이라 불리고 양피못 옆 들판은 양피지들로 명명하고있다. 그렇다면 양피사촌 또는 피촌은 남산리 쌍탑지점이며 이곳이 양피사터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또 그 앞 연못이 바로 서출지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또 삼국유사에는 양피사 옆에 염불사라는 절이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염불사탑자리가 발견된 지점이 남산리 쌍탑지점에서 남쪽으로 5백m지점이니 지리적 설명으로도 남산리 쌍탑앞 연못이 서출지라는 심증이 더해진다.
그렇다면 왜 문화당국은 서출지의 정확한 위치를 찾는 노력을 외면하는 걸까? 그것은 바로 고집불통의 탁상행정이 빚은 소산물이다. 경주시 문화재담당자는 서출지논란에 대해 "문화재논쟁에일일이 귀를 기울이기가 힘들다"고 잘라 말했다. 솔직히 얘기하자면 귀찮다는 것이다. 그러나 서출지위치를 바로 잡는 것은 역사를 바로 잡는 일이다. 이제라도 서출지의 올바른 위치를 찾기위한 체계적인 고증이 다시 시작되어야한다. 그것이 바로 찬란한 문화유산을 이어받은 오늘의 우리가 해야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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