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쓰러지지 않는 노인'(不倒翁) 등소평의 사망으로 그의 후광에 힘입어 중국 정.재계를 주름잡던 그의 자녀를 비롯한 가족들의 앞날은 어떻게 될까.
이미 등소평의 건강악화와 정계 일선에서의 은퇴를 시점으로 그의 자녀들의 몰락은 기정사실화돼왔다. 여기다 전임자의 공적을 깎아내리게 마련인 중국권력층의 속성상 후계자가 전임자 가족을예우하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아 등소평의 가족들은 찬밥신세를 면치못할 것으로 보인다.혁명만큼이나 파란이 많았던 등소평의 결혼생활은 3명의 부인을 맞이한 데서 잘 나타난다. 첫부인 장서원은 난산으로 일찍 숨졌고 둘째부인 김유영은 등과 이혼하고 이유한과 결혼했으나 나중에 이유한에 버림당한뒤 모스크바로 쫓겨나 자책감으로 신경쇠약에 걸려 등을 버린 후회로 생을마쳤다.
이혼뒤 등소평은 1939년 당시 항일공작을 담당하던 부유층출신의 현재부인인 탁림(卓琳)을 만나모택동과 강청부부가 지켜보는 가운데 혁명의 요람인 연안양가령의 모택동토굴집에서 결혼식을올렸다. 그의 나이 35세, 탁림은 23세였을 때였다.
등소평은 탁림과의 사이에 큰딸 등림(鄧林), 장남 등박방(鄧樸方), 둘째딸 등남(鄧楠), 셋째딸 등용(鄧榕), 막내아들 등질방(鄧質方) 등 2남3녀를 낳았다.
등소평이 복권된뒤 이들 자녀들은 등을 보필하며 영향력을 행사, 중국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등박방은 등소평의 두뇌, 등남은 등소평의 손, 등용은 등소평의 귀와 입'으로 통할 정도였다.이들 자녀들은 등소평의 파란많은 인생처럼 아버지의 권력 부침에 따라 수난과 후광을 맛보는 등적지 않은 고통에 시달렸는데 가장 큰 피해자는 등소평의 총애를 받았던 장남 등박방이다.재능이 뛰어나 북경 제13중학 졸업뒤 북경대학물리학과에 입학, 장래가 촉망되던 그는 1966년 대륙을 뒤덮은 문화혁명시절 홍위병들이 방사능오염연구실에 가두고 창밖으로 던져 하반신 불구가돼버렸다.
아버지의 권력 부침을 생생히 목격한 큰딸 등림은 정치에는 관여치 않고 미술활동에만 전념하고있는데 과거 문혁시절 주자파의 자식으로 몰려 취직을 못하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등소평이 평소 가장 아꼈던 둘째딸 등남은 등소평의 복권으로 과학원생활과 과학기술위 부주임직을 맡아 중국과학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개혁.개방정책에 적극적인 역할을 하며 아버지의 총애를 받았다.
막내딸인 등용은 등소평의 눈과 귀, 입 역할을 하며 개인비서로 영향력을 행사했는데 해외에서부친의 건강에 대해 함부로 이야기하고 다닌다는 당국의 질책을 받기도 했다. 그의 남편이자 인민해방군 장비부 부장직을 맡았던 하평(賀平)도 진급에서 누락되면서 사임하고 말았다.막내아들 등질방은 미국로체스터대학에서 양자론을 전공한뒤 IBM에서도 근무하는 등 평범한 생활을 하다 수도강철 홍콩지사 사장직에서 물러나면서 금융비리에 연루됐다는 혐의로 관계기관의조사까지 받았다는 소문이 나돌 정도로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이들 등소평의 자녀들은 특히 강택민 주석과 관계가 껄끄러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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