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목요칼럼 '세풍'-재미있다는 것

"이정훈 "

도심 빌딩숲속의 작은 골목길 한 귀퉁이. 대중가요테이프를 팔고 있는 리어카에서 여러가지 소리들이 손님을 부른다. '사랑한 이유'라는 애절한 호소에서부터 '그사랑 잊을순 없다'는 확실한 다짐이 있는가하면 '사랑밖엔 난 몰라'라는 사랑지상주의가 있다. '차차차'와 '찰랑찰랑'도 한몫을거드나 대부분 '사랑'주제에 묻혀버린다. 테이프는 목놓아 '사랑'을 외치지만 행인들의 반응은 그렇게 적극적이지 못하다. '사랑'을 갈구하지 않아서 그럴까. 아니면 시간이 없어서일까. 그도저도아니면 뭣일까. 도시전체를 짓누르고 있는 불경기 탓만은 분명 아닌 듯하다.

*범람하는 사랑타령

우리들은 살아가면서 많은 욕구를 가지게된다. 자라면서 친구를 사귀고자하는 욕구, 학식을 높이고자하는 욕구, 사회적 지위를 얻고자하는 욕구등 여러가지다. 그중에서도 이런 후천적 욕구보다개체를 지키고자 하는 자기보존이라든가 종족을 유지해 가겠다는 종족보존등 선천적 욕구가 더강렬하다. 이것이 본능이다. 따라서 본능은 주관적으로는 유쾌감을 주는 충동이고 객관적으로는종족이나 개체를 보존케 하는 힘이라 할 수 있다. 그 전형적인 것이 성본능이다. 골목길 테이프가그렇게 '사랑'을 앞세워 성본능을 두드리는데도 행인들이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는데는 그만한원인이 있을 것이다.

사실 우리 모두가 사랑의 불감증에 걸려 있는게 아닐까. 눈만 뜨면 사랑이고 여기도 사랑, 저기도사랑이다. TV도 사랑이고 활자도 사랑이다. 그래야 청취자도 많고 독자도 많다고 믿는 모양이다.이러한 싸구려 사랑의 범람으로 진정한 사랑은 오염된 강에 물고기 씨 마르듯 자취가 없어졌다.가슴에서 가슴으로 와닿는 그런 사랑이 지금 어디에 숨어 있을까. 사람은 누구없이 성본능에는약한 존재다. 이 약점을 노려 성을 상품화한다면 그이상 비겁할 수가 없다. 영상매체는 틈만 있으면 벗기기 경쟁을 하고 활자매체는 기회만 주어지면 단맛을 보이려한다. 달콤하게 그리고 재미있게….

*진정한 사랑은 어디로

그러나 대중매체는 오히려 감미롭고 흥미에 빠져드는 것을 막아주어야 할 책무가 있다. 왜 그 감미로움이 영원히 독자의 환영을 받아왔다면, 한때 번창했던 황색신문이 버림을 받고 없어졌는가.우리 주위에도 그런예가 많았다. 알록달록 젊은이들의 호기심을 채워주던 신문이 어느새 다른길을 찾았고 제작자들은 흩어졌다. 며칠전 보도에는 여고생이 출산을 하여 어른몰래 그 아기를 장롱속에 감춰뒀다가 숨져 부모가 이 사실을 경찰에 신고했다는 것이다. 또 외설연극을 공연했다고관계자들이 구속됐으며, 치정에 얽힌듯한 사건으로 남녀 세사람이 총탄을 맞고 숨졌다. 모두 성본능을 바르게 다루지 못한데서 온 사건들이다. 이제 아무 부끄럼없이 일반화 되어 가는 이런 세태,성을 상품화하는 사람들, 흥미 일변도의 사람들은 그 책임의 일단을 깊이 뉘우쳐야 할 것이다.*흥미주의 상품화 안돼

지난 1월 일본에서 한국특파원들과 공동기자회견을 가진 일본 아쿠타가와상(芥川賞)수상작가 유미리(柳美里)씨는 섹스에관한 질문에서 이렇게 답했다. "섹스는 절정을 추구하는 것이다. 절정다음엔 아무것도 없다. 죽음과 흡사하다. 죽음을 추구하는 듯한 느낌이다".

감성에 호소하는 흥미는 오래가지 못하고 오직 이성에 발을 댄 진실만이 영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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