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설아동 1천여명의 어린이날

'어린이는 튼튼하게 낳아 가정과 사회에서 참된 애정으로 교육하여야 한다'

대한민국 어린이헌장 제2조. 어쩌면 당연하게 누려야 할 어린이들의 권리. 하지만 이 땅의 모든어린이들이 이같은 권리를 누리진 못한다. 불의의 사고로, 가정 불화로, 버림받아 부모와 헤어져고립된 어린이들이 대구시내에만도 1천여명이 '시설'에서 살고있다.

스스로 가장 역할을 해야하는 어린이도 5백여명에 이른다.

따뜻한 가정이 있는 어린이들이라면 생일과 함께 가장 기다리는 날, 어린이날. 이 날을 이들 힘든우리의 싹들은 어떻게 보낼까? 이들과 함께 하는 하루로 이 날을 꾸민다면 어떨까?애활원 막내둥이 철수(9·ㅍ초등학교 2년)는 해수욕장이 뭐하는 곳인지 모른다. 친구들이랑 형,누나가 함께 모여 놀러간다니까 그저 기분이 좋다. 남들은 한여름에 가는 바닷가를 애활원 아이들은 철이른 5월, 이번 어린이날 가보기로 했다.

영아원 출신인 철수는 6살때 이곳으로 왔다. 부모 이혼으로 고아원을 찾은 아이들과는 다르다. 태어날 때부터 버려졌다. 때문에 철수는 부모 얼굴조차 모른다. 영아원에서도 유난히 발육이 늦어 6살이 돼도 제대로 못걸었다. 뒤늦게 배운 말도 '형아' '누나'가 먼저. '엄마'는 한참 뒤에 배웠다.남들은 입학 전에 영어까지 배우는데 철수는 한글도 깨치지 못했다. 결국 특수반에 편입됐다. 학교에서 성이 다른 아버지 이름을 써내는 것도 못내 서글프다. 세상은 철수가 견뎌나가기엔 벅차기만 하다. 9살이 돼도 여전히 손가락을 입에 물고 다닌다. 불안한 탓일까.

하지만 철수에게도 꿈은 있다. 착한 사람이 되면 엄마가 찾으러 온다고 굳게 믿고 있다. 그래서절대 말썽을 부리지 않는다. 한번도 보지 못한 엄마지만, 이름 한번 불러주지 않은 엄마지만 가슴저 깊은 곳에선 매일같이 엄마를 부른다. 그리고 어린이날 난생 처음 바닷가에 간다. 안개속에 숨은 듯 기억조차 없는 엄마의 얼굴이 행여 생각날는지 모를 일이다.

매년 어린이날마다 수성이(13·ㅂ초등학교 6년)는 TV보기나 라면 끓여먹기로 만족해야 한다. 소년소녀가장이라고 구청과 주민들이 얼마씩 생활비를 보태주지만 어린이날이라고 따로 찾아오진않는다. 선물은 꿈도 못꾼다.

때문에 어린이날이면 괜스레 밖에 나가기 싫어진다. 다른 아이들처럼 엄마, 아빠와 외식하며 기분을 낼 수도 없다. 한번씩 집을 찾아오던 아주머니들도 이날만큼은 자신에게 신경쓸 겨를이 없다는 것을 안다. 모두 가족과 함께 지내야 하니까. 가끔 '우리 부모님은 어디 있지?'하는 생각이 들면 화가 난다.

수성이는 단지 어린이날이 공휴일인 것에 만족한다. 칠순 할머니가 잔소리 하지 않고 편안하게내버려두는 것도 큰 선물이다. '남들처럼 컴퓨터라도 있으면 덜 지겨울 텐데'하고 꿈을 꿔보지만자신의 처지에선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이라 이내 체념해 버린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 어린이날마다 괜스레 우울할 필요가 없으니까. 그리고 그땐 홍명보 같은훌륭한 축구선수가 돼 있을거다.

올해 어린이날에도 봉석이(14·ㄴ중학교 1년)는 야구장에 갈 수 없게 됐다. 보육원생 모두 군부대구경을 가기로 해 '희망사항'을 다시 내년으로 넘겼다. 부모님이 있으면 떼를 써서라도 갔겠지만봉석이는 다르다. 그나마 보육원 형제들과 함께 뛰놀 수 있는 것도 다행스런 일이다."남들 눈치 안보고 우리끼리 어울리는 게 훨씬 나아요"

사실 올 어린이날은 전처럼 시내에서 열리는 각종 행사에 '동원'되는 것보다 훨씬 편하다. 그곳에서 다른 시설 아이들과 마주치는게 싫었고 몸으로 움직이는 놀이가 없어 항상 불만이었다. 좋은옷 입고 비싼 신발 신은 또래를 볼 때마다 기분이 상해 돌아오는 것도 짜증스러웠다.봉석이는 중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한번이라도 삼성라이온즈 양준혁선수를 만나는 게 소원이다.지금까지 치과의사가 되는 게 꿈이었지만 학교성적이 너무 나빠 꿈을 바꿨다. 얼마전 준혁이 형을 잘 아는 아저씨가 사인 볼 3개를 구해준다고 해 잔뜩 기대에 부풀어 있다. 봉석이는 오늘도야구선수가 되겠다는 다짐을 하며 꿈속으로 빠져든다. "김봉석 선수, 투스리 풀 카운트에서 마지막 6구, '딱!' 홈런입니다, 홈런"

〈金秀用·全桂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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