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6·10 민주항쟁' 국민들 전폭지지

"'참민주' 못살려 안타까움만…"

"독재타도 민주쟁취 하나된 소리, 민주와 해방의 나라 이뤘다. 아아 우리들의 투쟁, 우리들의 눈물, 우리들의 사랑, 우리의 나라…"

87년 6월 10일, 시민·학생들은 민주주의를 외치며 시내로 쏟아졌다. 대구시 동성로에서 반월당까지 거리를 가득 메운 1만여 시민들은 경찰 저지선을 뚫고 '호헌철폐' '직선제 쟁취'를 외쳤다. 사제복 차림의 신부, 법의를 입은 승려, 성경책을 든 목사까지 시위대에 합류했다. 서문시장 상인들은 시위대에 빵과 우유를 나르기도 했다.

그리고 10년이 흘렀다. 당시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 대구경북본부'에서 역사의 현장을 지켰던 지도자들은 6월항쟁 10년을 되돌아보며 남다른 감회에 젖는다.

"최루탄이 시가지를 뒤덮었지만 누구도 시위대를 욕하지 않았어요. 참여하지 않더라도 박수를 치며 후원하는 사람이 많았죠"

당시 국민운동본부의 공동대표였던 유연창목사(69·대구 봉산성결교회)는 진압에 나선 경찰도 직접적인 행동을 꺼릴 정도로 분위기가 고조됐음을 회고했다.

민통련의장으로 대표직을 맡았던 이강철씨(50·국민통추위 대구경북지부장)도 "30여년 군사정권의 본산 TK지역에서도 민심이 등을 돌렸다는 점은 정권의 부당성을 확인하는데 충분했다"며 대구지역 6월항쟁의 의의를 설명했다.

운동본부 조직부장으로 일했던 하종호씨(40·경실련사무국장)는 "대학생들이 6월항쟁을 주도할정도로 큰 힘을 발휘했다"며 "6월 항쟁을 통해 우리나라는 비로소 민주주의의 터전을 닦았다"고역사적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나 이들은 오늘 우리 사회가 10년전 6월 항쟁에서 얻었던 '민주주의'를 배반했다고 입을 모았다. 노동법 날치기, 한보사태, 김현철사건 등으로 정경유착·부정부패가 끊이지 않고, 이를 비판해야 할 학생들까지 '폭력'으로 물든 현실을 개탄했다. 특히 한총련 출범식에서 편향된 사상에 몰입, 선량한 시민을 죽음으로 몰고 간 한총련 지도부의 시대착오적 행동에 강한 거부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한총련이 무고한 시민에게 사용했던 폭력은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 될 수 없습니다. 국민의 지지를 얻어야 할 학생들이 오히려 국민들의 외면을 자초하는 결과를 낳을 뿐이지요. 이제 6월 항쟁 10년을 맞아 더욱 성숙한 학생운동으로 거듭나기 위해 뼈를 깎는 반성이 필요합니다"〈全桂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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